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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Aug 15. 2016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가려진 피의 역사 3.

프랑스 파리

오르세 실내 정면 이미지
오르세 벽에 걸려 있는 시계
앙투안 부르델의 헤라클레스

4.    오르세 미술관


1804년 최고재판소로 지어진 건물로 오르세 궁이라 불렸으나 불타 버리고, 1900년 개최된 ‘파리 만국박람회’를 계기로 파리 국립 미술학교 건축학 교수였던 빅토르 랄로에 의하여 오르세 역으로 다시 지어졌다. 현대적으로 지은 역사(驛舍)였으나 1939년 문을 닫게 된 이후 방치되었다가 1979년에 현재의 미술관 형태로 실내 건축과 박물관 내부가 변경되어 1986년 12월 ‘오르세 미술관’으로 개관되었다. 


인상파 미술관에 전시하던 인상파 회화를 비롯한 19세기 미술작품을 주로 전시하고 있다. 인상주의를 대변하는 많은 그림을 소장하고 있어 일명 ‘인상주의 미술관’으로 불리기도 한다. 현대 미술학의 살아 있는 교과서로서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 상징주의 등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가장 중요한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는 전시 공간이다.

오르세 미술관은 루브르 박물관, 퐁피두 센터와 함께 파리 3대 미술관이다. 루브르 박물관이 고대에서 19세기 작품을 전시하는 데 반해 오르세 미술관은 19세기 이후 근대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퐁피두 센터가 현대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것을 볼 때 오르세 미술관은 시기적으로 중간 단계 예술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그나마 약탈과 노략질이 아니라 19세기 이후 프랑스에 살았던 사람들이 평화롭게 그린 회화와 조형미술을 관람할 수 있는 곳이 오르세 미술관이다. 많은 화가의 그림들이 있지만 직접 미술관에 가 보면 쿠르베를 매우 많은 가치 비중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의 그림들이 매우 대작이기도 하지만 특별히 별도의 공간에 그림을 전시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마침내가 방문한 날은 L'Atelier du peintre(화가의 아틀리에) 가수리 중이어서 볼 수는 없었으나 다른 그림은 충분히 감상할 수 있었다. 

아침의 인상,1855


오르세 미술관 일층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주는 그림은 콩스탕 트루아용의 그림이었다. 그가 그린 소떼를 몰고 일하러 가는 아침의 인상(Les Boeufs affant aulabour ; effect du matin),1855은 미술관 일층 중간쯤에 걸려 있다.


바르비종 파 동물 화가들 중 동물 묘사가 가장 뛰어난 콩스탕 트루아용(Constant Troyon)은 1810년 국립 자기 제작소가 있는 파리 근교 셸부르에서 출생하였다. 1833년 살롱에서 데뷔하여 1847년의 네덜란드 여행에서 포테르(Paulus Potter)에게 영감을 받는다. 포테르는 17세기 네덜란드의 동물화가로서 목초지(牧草地)에서 노는 가축들의 생태를 생동감 넘치게 묘사한 화가로서 유명하다. 특히 포테르는 색채의 조화에 뛰어나 외광(Plain Air)의 효과를 살리는 것에 재능을 보여, 그의 작품 대부분은 밝고 환한 풍경 속에 있는 동물들을 묘사하고 있다. 이는 바르비종 파의 이상과 잘 맞아떨어지는 것으로서 트루아용의 이 그림에서도 동트는 아침 햇살에 반사된 소들의 입김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1855년에 그려진 이 낭만적이며 동시에 사실적인 그림은 낭만파 회화의 종착역으로 이해될 수 있는 바르비종 파(École de Barbizon)의 후반부쯤에 위치하는 그림이다. Jean-BaptisteCamille Corot(코로), Charles-François Daubigny(도비니), Jean-François Millet(밀레), Théodore Rousseau(루소)로 대표되는 바르비종 파들은 바르비종이라는 작은 마을이 속한 퐁텐블로 숲 주위의 소박한 농촌 풍경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묘사를 그들 회화의 주제와 철학으로 삼았다. 이 바르비종 파들은 뒤 이어 이어지는 르누아르와 모네로 대표되는 인상파 회화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는데, 그러한 인물 들 중에 트루아용도 속해 있었던 것이다.


화면 중앙을 지평선이 가르고 있다. 사실 이러한 화면의 이분법 구도는 약간은 위험하기까지 한 과감한 것이지만 바르비종 파들의 그림(밀레, 도비니)들에서는 자주 발견되는 기법이다. 퐁텐블로 주위의 풍광을 사실적으로 화폭에 옮기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던 그들이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지평선을 그대로 그림에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소 떼들이 내뿜는 하얀 입김이 아침 햇살에 더욱 선명하고, 동시에 역광에서 묘사한 탓에 목동이나 소들의 표정은 읽을 수 없다. 이러한 표현은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정치, 경제 상황과 무관해 보이지는 않는다. 당시는 민중들이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벅찬 현실이었고, 이런 이유로 미루어 볼 때 트루아용의 역광 묘사는 민중의 고통 어린 표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였는지도 모른다.


가로 세로 4mⅩ2.6m나 되는 이 거대한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이 그림의 제목처럼 트루아용이 표현하고자 했던 ‘아침의 인상’이너무나 확연하게 다가옴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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