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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Aug 12. 2016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가려진 피의 역사 1.

프랑스 파리 여행기

샹젤리제와 연결된 알 수 없는 거리
파리의 랜드 마크 에펠탑
세느강에서 보는 석양

1.    파리를 보는 매우 삐딱한 생각


로마시대 골(Gaul)족들이 살던 지역을 통치했던 카이사르는 그 지역의 이야기를 갈리아 전기에 남겨 놓았다. 현재 프랑스의 수도 파리는 골족의 일파였던 Parisii족들이 살았던 저습지로서 진창과 뻘이 가득한 곳이었다

 

 강이 도시의 중심부를 관통하고 있는 이 도시는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예술의 도시로 우리에게 각인되어있다. 그렇게 불리게 된 배경은 매우 많은 이유가 있겠으나 지금 우리가 그렇게 알고 있는 이유는 다분히 의도된 것이라고 짐작된다파리가 예술의 도시라는 것에 뚜렷하게 반대할 자료를 가지지 못한 나지만여러 번의 경험과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또 이런저런 생각의 결과 파리는 예술의 도시가 아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따라서 혼자만이라도 파리는 예술의 도시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대세에 저항해 보기로 한다.

 

우리나라 서울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전시물 중에서 이 땅 밖의 물건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그래서 우리 오천 년의 역사와 견주어 전시품은 턱없이 부족하고, 그나마도 고대의 유물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데 이는 우리가 단 한 번도 이민족의 유물을 어떤 방법으로도 가져오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한다. 하지만 뚜렷한 고대사가 없는 프랑스의 박물관 곳곳에는 이집트유라시아, 그리스, 로마의 유물이 즐비하다뭔가 찜찜하지만 어쩔 것인가다만 그들도 그들의 고대사가 아닌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는 희미한 기대만 있을 뿐이다.

 

 

2.    파리


인구 천만의 도시답게 파리는 매우 크다. 그리고 중세 시절부터 계획된 도시는 매우 질서 정연하다. 물론 근대에 와서 만들어진 신도심은 조금 복잡하지만 관광객들이 머무는 구도심은 쭉 뻗은 도로를 중심으로 오래된 건물과 새 건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파리의 지하철은 우리나라에 비해 매우 더럽고 어두우며 불편하고 동시에 불친절하다. 역의 이름을 표시하고 방향이나 다음 역의 이름이나 이전 역의 이름을 표시하지 않아 관광객들이 매우 힘들어할 수 있다. 하지만 버스는 비교적 깨끗하고 천천히 가며 또 친절했다. 


파리 시내, 특히 샹젤리제 거리(에투알 개선문을 시작으로 콩코드 광장까지 이어진 직선 도로)를 걷다 보면 요즘이 나라(이 나라뿐만 아니라 유럽 대부분의 나라)가 가진 문제의 핵심인 이민자와 다민족 문제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나라에서 제법 알려진 샹송 Les Champs Elysees(샹젤리제)의 가사를 보면 “끝없는 가로수와 가로등 그림자 언제나 화려한 오! 샹젤리제,, 두 사람 세 사람 네 사람 열 사람 다 함께 걸어가면 모두 다 친구, 다 정답게 모두 다 손잡고 거리로 다 함께 걸어가면 모두 다 친구~”라는 가사가 있다. 이미 그들도 예전부터 이러한 현상을 알고 있는 듯 하지만 여기에는 약간의 오류가 있다.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사람들은 크게 세 부류가 있었다. 먼저 관광객, 두 번째 백인 프랑스 사람들, 세 번째 흑인이거나 햄, 셈 계열의 아시아인들이다. 그런데 세 번째 사람들은 대부분 걸인이거나 청소부, 아니면 실업자처럼 남루한 행색이 많아 보였다. 다시 말하자면 샹젤리제 거리는 모두 함께 행복하게 걸을 수 있는 거리는 이미 아니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나는 삐딱하게 보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같이 간 나의 가족들도 모두 이 의견에는 동의한 것을 보면 순전히 나의 삐딱함만은 아닌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파리, 샹젤리제 거리는 인종 전시장이었고 동시에 근대의 노예제도가 그 형태만 바꾼 채 유지되고 있는 모습으로 나에게는 보였다. 


프랑스 파리를 찾는 외국 관광객은 지난해 기준으로 억 단위에 접근할 정도로 많다. 따라서 관광 인프라는 어느 정도 구비된 것처럼 보이나 좀 더 자세히 보면 프랑스라는 나라의 거만함과 저들 문화재에(정확히는 저들의 것이 아닌 것이 더 많은데) 대한 알 수 없는 위세가 느껴진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불편하고 더러우며 친절하지 못한 지하철 노선, 그리고 관광 안내를 위한 안내소를 거의 찾을 수 없었다. 다분히 프랑스 사람 자신들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구조로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이런 것이 조금 부럽기도 했는데 부러우면 지는 것이므로 부러워하지 않기로 한다.


다음 편에는 루브르, 오르세, 바토무슈, 오랑주리, 오벨리스크에 대해 이야기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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