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의 여유

The Planets, Op. 32, Gustav Holst

by 김준식

2017년 9월 9일 아침, 지구행성에 살고 있는 나의 일상이 시작된다. 이 광막한 우주 한 귀퉁이, 이토록 작은 행성에서 일생을 보내고 마침내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갈 순간의 삶. 너무나 미미하여 도저히 그 흔적조차 알 수 없는 우주에서의 내 삶과 존재이지만, 그 미미함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항상 그 미미함에 ‘가치’ 부여의 훈련을 받아왔다. 그런저런 교육과 관습 덕에 그나마 우리의 삶은 이 정도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미미하고 또 미미하다. 100년 전쯤, 이 사람도 그 미미함을 알았을까? 행성이라고 표제가 붙은 이 음악을 토요일 아침 한가롭게 듣는다.


The Planets, Op. 32, Gustav Holst 작곡


Gustav Theodore Holst(홀스트, 1874 ~ 1934)는 스웨덴 혈통이지만 영국 사람이다. 1916년에 완성된 이 음악은 당시에는 별로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가 인류가 달 착륙을 하고 우주개발이 시작되면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1. Mars, the Bringer of War (1914) 알레그로. C장조. 5/4박자.(화성)


1867년 처음 출판된 Thomas Bulfinch(볼핀치, 1796 ~ 1867)의 The Age of Fable(우화의 시대, 1855)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그리스의 신들을 체계적으로 연결하여 편집한 책이다. 즉,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볼핀치 판 그리스 신화의 원전이 된 책이다.


이 책에 의하면 화성(Mars)은 전쟁의 신이다.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붉은색으로 보이는 행성의 색깔이 이행성의 성격을 결정해버리고 만 것이다. 붉은색은 전통적으로 갈등의 원인, 맹목적인 폭력을 상징해 온 색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정열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붉은빛의 화성은 그리스 신화에서 전쟁의 신 마르스와 초기 그리스 사상가 플라톤의 투 모스(마음을 추구하는 데 있어 용기와 결단)를 상징하기도 한다. 전쟁의 신 마르스를 그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와 마르스'가 있다. 신 플라톤주의에서는 보티첼리의 이 작품이 두 행성(비너스를 상징하는 금성과 화성을 상징하는 마르스)의 결합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화성은 불안하고 뭔가 일어날 것 같은 긴장으로 음악이 시작된다. 계속해서 되풀이되는 늠름하거나 강렬한 관악과 타악의 리듬이 주제처럼 전쟁의 장면을 묘사하는 듯하다. 관악으로 진행되는 처음의 주제와 현악으로 연주되는 다른 주제, 타악으로 진행되는 또 다른 주제가 화려하고 다이내믹하게 엉키거나 또 멀어지듯이 연주된다.


불안함을 강조하듯 정적과 광포함이 긴박하게 뒤섞이고 불협화음과 글리산도의 음들이 이어지다가 관악기와 타악기가 거대한 화음으로 연주되는데, 마치 어두움 속에서 무엇인가 긴박하게 움직이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성난 파도처럼 밀어닥치는 클라이맥스에서는 강렬한 리듬의 연타가 계속한 다음 대포 같은 요란한 소리로써 끝마친다.


무언가 일어날 것 같은 불안하고도 깊은 강렬한 리듬의 연속은 전투에 나가는 장중한 군대의 행진곡을 연상하지만, 곡은 다가올 전쟁(그러나 이 음악이 작곡될 무렵은 1차 대전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으로 인한 죽음의 공포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중간중간 들리는 대포소리와 마지막 부분의 Tutti(총주)가 불협화음을 격렬하게 연타하며 내는 요란한 소리는 실제 전쟁의 느낌을 받는다


2. Venus, the Bringer of Peace (1914) 아다지오. 내림 E장조. 4/4박자(금성)


신화에 의하면 Venus는 미의 여신이지만 몹시 바람기가 많은 여신이었다. 그의 남편 불의 신 헤파이스토스 몰래 사귄 남자는 여러 명인데 이것은 동 서양을 막론하고 아름다움이란 선과 악의 경계에 있으며, 도덕과 윤리의 반대쪽에 위치하고 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쨌거나 세 개의 서정적인 아름다운 주제가 연주되며, 평화롭고 온화함이 느껴진다. 우아하며 부드러운 곡으로, 먼저 들은 <화성>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매우 복잡한 관으로 만들어졌으며 특이하게도 소리가 나오는 쪽으로 손을 넣어 연주하는 금관악기인 호른은 그 음색이 목관악기와 버금갈 정도로 유장하고 부드럽다. 호른 이외의 금관악기는 거의 연주되지 않을 만큼 대부분이 여리게 연주된다.


심지어 곡 중간에 현악의 고음부는 마치 낙원을 묘사하듯 화려하고 맑은 아르페지오가 섬세한 물결처럼 살랑댄다. 이어서 평화롭고 아름다운 선율이 호른과 목관이 같이 연주된다. 하지만 뒷면으로 흐르는 음악은 약간의 음흉함과 음모를 감추지 않는 듯 저음의 현악으로 표현되고 있다. 트라이앵글의 미묘한 쇳소리가 나는 후반부는 이 얼마나 아름다운 행성인가를 나타내는 홀스트의 찬양이다. 하지만 홀스트는 알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금성의 표면 온도는 섭씨 500도의 불지옥이라는 것을.


3. Mercury, the Winged Messenger (1916) 비바체, 6/8박자.(수성)


처음부터 불협화음이 등장하지만 귀에 거슬리는 정도는 아니다. 지나치게 예리한 음들이 지속되고 트라이앵글과 금관악기가 등장하더니 이어 현악기가 같이 연주한다. 즉, 다른 종류의 악기지만 비슷한 소리의 악기들이 번갈아 가며 연주하여 매우 밝고 경쾌하다.


수성이 가지는 메신저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이 악장의 특징은 론도 풍이다. 어쩌면 약간은 익살스럽게 왔다 갔다를 반복하는 피에로처럼, 혹은 회오리바람처럼 맴돌며 날아다니는 신들의 사자를 연상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트라이앵글이 멀리서 바람처럼 종을 울리며, 노크하듯 소식을 전해주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약 4분의 짧은 악장이다.


4. Jupiter, the Bringer of Jollity (1914) 알레그로·지오코소, C장조, 2/4박자.(지오코소는 익살스럽게라는 악상 기호)


언젠가 우리나라 지상파 방송의 뉴스 시그널로 유명해진 이 악장은 전체 7곡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구성의 변화가 다채로운 곡이다. 신화의 주신 주피터(제우스)를 찬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음악은 장대하고 동시에 변덕스럽다.


현악으로 여리게 시작되는 것을 중간 톤의 관악기가 받아 이어지는 초반부의 느낌은 목성이 태양계의 행성 중 가장 큰 행성임을 느끼게 할 만큼 웅장한 느낌을 준다. 이어지는 합주는 마치 우리가 우주선을 타고 태양계 행성들을 여행하는 여행자가 되어 느끼는 우주의 풍광처럼 다채롭다.


곡의 중반부쯤 들리는 캐스터 넛츠의 소리는 수많은 우주의 별무리들이 가득한 목성의 신비한 하늘을 떠올린다. 뒤이어 이어지는 유려한 현악 사이사이에 가끔씩 들리는 팀파니 소리는 우리가 우주의 중심일 것 같은 엉뚱한 기대와 이상한 자신감을 느끼게 된다. 주제의 변주로 이어지는 후반부는 약간은 장난스럽기도 하고 혹은 딴청을 부린다.


4개의 주제를 가진 이 악장은, 곳곳에 환희가 충만한 곡이며, 6개나 배치된 호른이 중심 역할을 한다. 높은 음역의 관악기가 고음으로 쉴 새 없이 나오며 호른을 지원한다. 이를테면 호른이 울리고 관악기가 행진곡처럼 나오다가 조용해지다가 다시 점점 빨라져 웅장한 화음으로 퍼져 울린다. 첼로가 느리게 나오며 저음으로 제법 고상한 선율을 연주하는데 아름답고 평화롭다.


이어서 다시 고음의 관악기들이 빠르게 울리며 주제를 재현하고 피콜로의 빠른 리듬과 저음의 관악기의 음색이 대비되며 경쾌한 기분을 준 후, 다시 웅장하고 느리게 울리며 거대한 끝맺음을 한다.


5. Saturn, the Bringer of Old Age (1915) 아다지오, C장조. 4/4박자.(토성)


금관악기 소리가 희미하고 불안한 가운데 저음의 현악이 스치듯 지나간다. 2분 음표의 낮은음만 계속 연주하여 알 수 없는 묘한 분위기의 주제가 연주된다. 주제를 확연히 알아차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주제가 연주되면서 조금씩 악기 소리가 커져간다. 주제는 몇 가지의 변주로 결합과 해체를 반복한다.


토성은 아름다운 고리를 가진 태양계의 행성이다. 뿐만 아니라 토성은 목성처럼 거대 가스행성인데 홀스트는 외관으로 보이는 이 행성을 나이를 먹어가는 우리의 삶에 비유했다.


목관과 금관의 관악기가 멜로디를 저음부에서 차분하게 연주한다. 중간 음역으로 바뀌어 점점 상승 분위기를 낸 후 작아져 종소리가 작게 울리고 관악기가 멜로디를 연주하며 작은 소리로 연주되던 중 갑자기 종소리가 울린다. 삶에 있어 의외의 순간처럼.


건반악기가 길게 끌며 종소리와 함께 희미하게 사라지며 평화롭게 끝난다. 노년의 쇠약과 절망을 암시하는 우울하고 공허한 선율이 신음하듯 연주되고 다시 한번 힘을 내어 일어서지만 조용히 종소리와 사라진다. 늙어가는 슬픔이 짙게 표현되어 있으며 음울하고 동시에 잔잔하다.


6. Uranus, the Magician (1915) 알레그로, C장조, 6/4박자(천왕성)


강렬하고 단단한 몇 대의 트럼펫이 처음부터 크게 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더불어 저음의 관악기들이 협조하듯 연주된다. 현악기와 타악기가 등장해지며 돌연 소란스러워진다. 소리들은 크게 펴졌다가 다시 수그러들어 작게 연주되기를 반복하는데 저음의 튜바가 이 상황을 이끌고 있다. 심벌즈가 울리고 tutti가 웅장하게 연주되면서 팀파니 소리가 분위기를 상승시킨다.


그런가 하면 신경질적인 고음의 관악기가 가끔씩 휘파람처럼 울리며 씩씩하게 진행된다. 피날레인 것처럼 화려하게 울려 퍼지다가 잠시 멈추더니 단속적인 소리를 내며 조용하게 연주된다, 마치 기이한 광경을 연출하려는 듯이. 다시 관악기가 이끄는 소리를 중심으로 팀파니가 울리며 고요하게 끝난다. 괴상한 주제를 계속해서 나타내어 기이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마치 마법사의 알 수 없는 주문처럼 알 수 없는 분위기로 연주되어 전체적인 악장의 느낌은 다분히 산만하다.


7. Neptune, the Mystic (1915) 안단테, 5/4박자( 3박자 + 2박자 )(해왕성)


잔잔하고 고요하게 연주되며 신비한 안개에 싸인 듯하다.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현악과 목관악기가 협주하면서 트라이앵글이 끼어드는 상황은 소리가 명확하게 나오지 않아 구불구불한 소리를 내기 때문에 듣고 있으면 돌연 서늘한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중간부터는 소프라노가 허밍으로 나오며 모든 악기들이 배경으로 숨어들어 더욱더 신비스럽고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앞선 여섯 악장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내는 것에 성공했지만 너무나 다른 탓에 전체적으로 이질감이 많이 느껴진다.


이 음악은 20세기 초의 여러 가지 상황과 맞닿아 있다. 이를테면 이 음악은 우주에 대한 인간의 관심이 증가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당시의 전쟁상황(1차 대전)에 대한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는 인간 정신의 표현이며 예술적으로 더 이상 퍼 올릴 수 없는 인간 감정 중심의 소재의 한계가 가져온 당연한 결과였다.


실존하는 인간의 몰락(전쟁으로 인한 죽음)에서 느끼는 인간의 나약함과 여전히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는 하늘(우주)과 지구 밖의 미지의 세계에 대한 관심의 확장이 이러한 음악으로 귀결되었을 것이다. 다양하고 부드러운(이전의 그 어떤 음악보다) 현악기의 울림소리와 강렬한 금관악기와 반면에 지나치게 관능적인 목관악기, 그리고 다양한 타악기의 효과가 잘 나타나는 7개의 관현악 모음곡인 ‘행성’ 은 20세기 초 우리 인류의 삶이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가에 대한 작은 증거이기도 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Jmk5frp6-3Q
https://www.youtube.com/watch?v=EE6_PacCnRw
https://www.youtube.com/watch?v=RkiiAloL6aE
https://www.youtube.com/watch?v=Gu77Vtja30c

https://www.youtube.com/watch?v=MO5sB56rfzA
https://www.youtube.com/watch?v=aDFGmiXnLjU
https://www.youtube.com/watch?v=v4wuV14Ql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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