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주변부

50대 중반의 일상

by 김준식
Everett Henry 가 그린 모비 딕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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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에 등장하는 아합(Ahab)은 처음 왕위에 올랐을 때 이스라엘의 왕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통치력을 발휘했고, 여러 곳에서 많은 조공을 받는 등(왕하 3:4),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태평 시대를 누렸다. 하지만 그는 바알 제사장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맞아 바알 숭배를 만연 시켰고(왕상 16:28-31) 선지자 엘리야의 저주로 이스라엘에 기근과 가뭄이 들게 했다(왕상 16:32-33). 여러 가지 악행이 이어지자 여호와는 갈멜 산상에서 선지자 엘리야를 통해 바알 우상의 허상을 드러내고 스스로 유일한 하나님이심을 나타내 보이셨다(왕상 18장).


여기서 바알(Baal)은 사실 가나안 원주민이 섬긴 풍요의 신으로서 오래전부터 폭넓은 신앙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모세와 여호수아의 인도로 황야를 방황하다가 가나안 땅으로 몰려온(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 사람들의 주신이었던 여호와와 충돌하게 된다. 성경에는 가능한 바알 신을 악행의 신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를테면 바알 신의 숭배 방식에 대한(난잡한 성행위) 비난과 인신공양의 악습에 대한 비난이었다. 물론 악습이 맞지만 성경적 접근이 당시의 문화적 경제적 풍토적 상황을 배제한 것이므로 지금의 우리는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2


소설 Moby Dick은 Herman Melville (허먼 멜빌, 1819 ~ 1891)이 1851년 발표한 소설이었지만 실제로는 그의 사후에 새롭게 해석(서머셋 모옴의 역할이 크다.)되면서 멜빌 또한 재 평가된다. 제목에 붙은 Dick은 남성 성기를 표현하는 속어로서 앞의 Moby(거대한)의 뜻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소설의 모티브가 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19세기 포경의 시대에 모카 딕(Mocha Dick)이라는 난폭하기로 악명 높은 향유고래 이야기가 있었다. 1820년에 적도 부근에서 미국 포경선 에식스 호를 들이받아 침몰시켰다. 또 1851년, 역시 비슷한 지점에서 영국 포경선 앤 알렉산더 호를 들이받아 배의 앞부분을 부숴버린 것이 뱃사람들에 의해 부풀려진 것이다. 소설에서는 이 거대한 향유고래를 주인공 에이하브(Ahab – 앞서 이야기한 아합의 영어 식 발음)가 일생동안 추격하다가 마침내 고래에 의해 배가 침몰하고 선장도 죽는 이야기인데,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선원 이스마엘이 이야기를 전해 주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프랑스 후기 구조 주의 철학자 Maurice Blanchot(블랑쇼, 1907~2003)는 1959년에 발표한 그의 책 Le Livre à venir(도래할 책)에서 고래와 에이하브의 관계를 이렇게 해석하기도 한다.


“에이하브와 고래 사이에서는 아주 애매한 방식으로 연결된다. 말하자면, 형이상학이라는 말로 형용할 수 있는 어떤 연극이 펼쳐지고 있는데, 같은 싸움이 세이렌과 오디세우스 사이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이 연극이나 싸움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각 당사자는, 자신이 전체가 되려 하고 절대적인 세계가 되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이 상대방의 절대적 세계와의 공존을 불가능하게 하는데, 어느 쪽도 이 공존이나 만남 이상으로 더 큰 욕망을 품고 있지는 않다. 에이하브와 고래를, 세이렌과 오디세우스를 동일한 공간 안에서 다시 연결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오디세우스를 호메로스로, 에이하브를 멜빌로 만드는 은밀한 염원이다. 바로 이것이 이 결합으로부터 생겨나는 세계를, 가능한 모든 세계들 가운데서 가장 위대하며 가장 무시무시하고 가장 아름다운 세계로 만드는 비밀스러운 염원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세계는 한 권이며, 이 책 이외에 그 무엇도 아닌 것이다.”(도래할 책, 심세광 번역, 그린비, 21~23쪽) 무슨 말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대충 의미는 짐작된다. (참고로 이 해석은 미국 커피 프랜차이즈 ‘스타벅스’의 상호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된다. 스타벅은 모비딕에서 피쿼드 호의 일등항해사 이름이다.)


3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Carl Gustav Jung(1875~1961)은 남성의 영혼을 ‘아니마 Anima’(영혼을 뜻하는 라틴어. Animism이 여기서 유래된 단어다.)라고 불렀다. 융에 의하면 중년의 남성이 겪는 이러한 심리적 공황이나 방황을 밤바다 모험 혹은 여행이라고 지칭했다. 인생에서 밤바다 여행은 여러 번 반복되는데 청소년기에 처음 경험한다. 그리고 3~40대의 청, 장년기에도 이 여행이나 모험을 거의 피하지 못한다. 융에 의하면 50대의 밤바다 여행은 거의 인생에서의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에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특별히 만들어진 용어가 '중년기'(Middle Age)라는 단어이다.


본래 밤바다 여행(모험) 이야기는 성경의 요나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요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성경의 이야기와는 좀 다른 버전이다. 성경에는 물고기의 뱃속에서 3일 만에 나왔다고 되어 있지만 이 이야기의 원형은 상당한 기간을 괴물의 뱃속에서 지내는 걸로 되어있다.)


어떤 영웅이 서쪽에서 물의 괴물(고래나 용, 여기서도 고래가 등장한다.)에 의해 삼켜진다. 그리고 그 괴물과 함께 동쪽으로 여행한다. 그러는 동안 영웅은 괴물의 뱃속에서 불을 지피고, 배고픔을 느껴괴물의 심장을 잘라낸다. 뒤이어 곧 그 괴물이 마른땅 위로 올라선 것을 알아챈다. 마침내 영웅은 괴물의 배를 가르고(아가리를 벌리고) 빠져나온다. 괴물의 내장이 너무 뜨거워서 영웅의 머리카락은 모두 없어졌다. 그리고 영웅은 그와 함께 그전에 괴물에 의해 삼켜졌던 모든 사람들을 자유롭게 했다. 에이하브는 죽는데 이 영웅은 살아 나온다.


해석해 보자면 깊고 캄캄한 괴물의 뱃속에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타성대로 때 묻은 인생을 그대로 유지하며 마감할 것인지, 아니면 머리카락을 온통 태우면서(기존의 것을 없애 버리고) 괴물의 심장을 잘라내고(권위와 절대적인 것에의 도전) 새로운 탄생을 모색할 것인지를 마지막으로 선택해야 하는 시기가 바로 중년이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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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의 일상은 다만 유지되고 있을 뿐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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