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s les jours
2015년에 쓴 졸시
重力
克重體强厚 (극중체강후)굵고 두터움으로 중력을 이긴 몸
絶影對朝暹 (절영대조섬)아침 햇살에 절묘하다.
花叢弱纖奭 (화총약섬석)약하고 가는 붉은 꽃 피워냈으나,
華葉不竝惜 (화엽불병석)안타깝구나! 꽃잎과 꽃이 함께 하지 못함이여.
1
대통령이 바뀌고 여러 가지 일들이 다시 제 자리를 잡았지만 현실 정치의 난맥상은 그렇게 간단하고 쉬운 일이 아니다. 여전히 많은 현안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고 어쩌면 지금의 대통령 임기 내내 이런저런 일들이 지금처럼 혼란스럽게 유지될지도 모를 것이라는 불안한 예감이 들기도 한다.
국제정세의 혼란은 단순히 북한의 '핵'과 'ICBM'의 문제가 아닌 초 강대국들의 이익과 더 깊이 연결되어 있는 탓에 문제의 중심인 우리의 역할은 미미하다 못해 그 존재감마저 없어 보인다. 이런저런 문제의 끝에 2300년 전 장자를 떠 올려 본다.
2
'장자'는 현실에 대한 불만과 개혁 요구를 반영하고 있으나 동시에 현실에 대한 무력감과 취약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마치 오늘날의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다.
'장자' 사상은 평민 지식인의 사상 및 중소 생산자(농민, 상인, 공인)의 희망을 대표하며 광대한 평민 계층의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 '장자'는 송나라(전국시대의 송나라)의 하급관리로서 비교적 많은 시간을 자연과 접하고 하층 노동자와 더불어 지낼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이었다. 이 점에서 장자는 유교의 계급적 정서와 완전히 다른 정서를 가지게 된다.
'장자' 스스로 경제적 형편은 곤궁하였으나 이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고 인색하고 교활한 부자, 그리고 정치세력에 대해 멸시와 분노를 표출하였다. 또 정치적으로는 통치계급에 비판적이었으며 특히 통치자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자를 더욱 천하게 보았다.
반면 하층 노동자나 자유직업 종사자에 대한 '장자'의 태도는 우호적인데 이들은 『장자』 전편에 걸쳐 여기저기에서 지혜와 재능, 그리고 고매한 도덕의 상징으로 묘사하고 있다.(수레바퀴 깍는 윤편, 소 잡는 포정 등) 이러한 '장자'의 평민 계급의 정치적 태도는 보기에 따라서는 현실이나 통치자들을 비판하는 혁명세력이 될 수도 있고, 동시에 현실 도피나 자아도취에 빠지는 염세적 보수적 경향을 띨 수도 있는 이중성을 갖는다.
이러한 '장자'의 이중성은『장자』라는 책 전체에 반영되어 현실을 비판하며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는 한편, '장자'스스로는 安命을 말하면서 정신적 자유를 추구하는 빌미로 슬그머니 현실을 도피하려는 모순을 스스로 보인다.
'장자'는 종종 '굴원'(전국시대의 정치가이자 비극 시인)과 비교되곤 한다. 이 둘은 역사적으로 비슷한 혼란한 시대에 살면서 회의와 분노로 가득 찼던 지식인들이었다. '굴원'과 '장자'는 똑같이 근심과 걱정을 가득 품고 마음 둘 곳 없는 세상을 살았지만 '장자'는 보다 높은 이상 세계에서 노닐고자 했고 이와는 반대로 '굴원'은 그 현실에 꺽여 돌을 안고 강에 뛰어들어 죽음으로써, 혼탁한 세상에 홀로 깨어 있다는 고귀한 정신을 보여 주고자 했던 지식인이었다.
'굴원'이 '장자'보다 현실 정치에 훨씬 적극적이긴 하나 통치계급을 배반하지 못하는 계급적 한계와 전통에 얽매여 있던 것에 비해 '장자'는 선명한 비판적 색채를 지니며 전통 관념에 대해 훨씬 해방적이었다.
토요일 아침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보니 지금 우리 시대, 또는 우리는... 아니 정확하게 나는, 굴원의 계급적 한계도, 장자의 선명성도 없는 답답한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