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vidyā
복잡한 일들이 매일매일 일어나고, 그 속에 나의 삶이 유지된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이런 모든 일들은 미리 예정된 일이거나 계획된 일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매일매일 새로운 장이 펼쳐지는 것 같기도 하다. 어제가 오늘 같기도 하고, 그리고 오늘은 어제와 다름이 없다. 하지만 미래는 짐작조차 할 수 없으니 우리는 얼마나 제한적인 삶을 사는 것인가? 아니 너무나 어두운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 이 상황에 딱 들어맞는 말이 무명(無明)이다. 즉, 밝지 않음이다.
산스크리트어 Avidyā 를 우리말로 풀이한 말이 무명(無明)이다. 무명이란 어리석음이다. 치(癡), 미(迷), 우치(愚癡), 무지(無知), 무지(無智) 등으로 풀이될 수도 있다. 매일매일을 보내고 있으면서도 그 속에 일어나는 내부적 작용에 대하여 그 어떤 것도 아는 것이 없는 우리의 상태가 Avidyā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내부적 작용 중 무엇을 모른다는 것일까? 그 무엇에 대하여 동 서양은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는데, 그것은 곧 인류 철학 발전의 역사요, 동시에 인류 문명사의 발전이기도 하다.
종교적 범위를 벗어나서 이 무엇을 단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아마도 ‘진리’ 일 수 있고 혹은 ‘본질’이라는 단어로 바꿔 쓸 수 있을 것이다. 17세기 위대한 철학자 스피노자가 그의 책[i]에서 밝힌 Substance(=a particular kind of matter with uniformproperties, 즉 균일 한 특성을 가진 특별한 종류의 물질) 일 수도 있고 라이프니츠가 말한 Monad [ii](a single unit; the number one. 단자) 일 수도 있다.
그것이 뭐든 간에 매우 중요하고 깊숙하게 존재하지만 동시에 지극히 간단하고 단순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간단하다’는 말은 이해가 아주 쉽게 된다는 말일 수도 있고, 동시에 도저히 이해될 수는 없는 어떤 상태를 말하기도 할 것이다. 따라서 부처의 진리나 스피노자나 라이프니츠가 이야기한 논리도 매우 쉽게 이해되기도 하고 또 이해 불가능한 경지에 존재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엄청난 부가적 설명을 쏟아부어 이 간단함 혹은 단순함을 설명하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간단함과 단순함은 우리에게 요령부득으로 다가 올뿐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역시 부처의 말에 의지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무명(無明)!
복잡한 세계에서 우리가 단순해지는 방법은 의외로 쉬운지도 모른다.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해 버리면 된다. 즉, 간단해지는 것이다. 그것이 본질이자 핵심이다. 그런데 우리는 결코 간단해지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간단으로 돌아갈 길을 잃어버렸거나 이미 거기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제 그리고 오늘 또 내일, 여전히 간단함으로부터 먼, 그리고 단순함으로부터 너무 먼 어딘가에서 복잡하고 힘든 삶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i] Baruch Spinoza(1632~1677) : 네덜란드 출신의 범신론자. 그의 위대한 명저 에티카(Ethics, Demonstrated in Geometrical Order; 기하학적 질서로 정의된 윤리학, 1664~65)에서 Substance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Such an uncaused, self-sustaining reality hecalled substance.(별다른 외부적 인과 관계도 없고 그렇지만 스스로 유지되는 실체를 그는 substance라고 불렀다.)
[ii] Gottfried Wilhelm Leibniz(1646~1716) : 독일 출신의 수학, 철학, 과학의 대가이자 외교관. 그의 책 단자론(Monadology, 1712~14) 처음, Monad에 대해 (The Monad, of which we shall here speak, is nothing but a simple substance, which enters into compounds. By ‘simple’ is meant ‘without parts.’; 우리가 여기서 말할 수 있는 모나드는, 단순한 물질로 구성되어 있는 단순 실체이다. 여기서 '단순함'이란 '부분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뜻이다.)라고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