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 베르사유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가려진 피의 역사 4

by 김준식
궁전 내부 교회당
자연을 지배하고 싶은 욕망의 표현, 하지만 절묘하다.
궁전 내부 정원의 숲, 어마어마한 넓이다.
중앙광장의 분수대, 저 멀리 번지 점프대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오스트리아 쉔부른 궁전이 그대로 따라했던 바로 그 정원
궁전 뒷편 분수

4. 베르사유

라틴어 VERSUS(영어 slope – 낮은 구릉 지역)에서 기원했을 것이라고 추측되는 베르사유는 기가 막히는 풍경임에는 틀림없다. 자연을 지배하고야 말겠다는 서양 정신의 표본이며 동시에 자신의 권위를 태양에 비유할 정도로 콧대가 높은 루이 14세의 정신이 그대로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약간은 불쾌한 느낌도 없지는 않지만 막상 풍경 앞에서는 이런저런 생각이 사라지고 그저 감탄만 하게 된다.


건축가 루이 르보(Louis Le Vau), 실내장식가 샤를 르 브룅(Charles Le Brun), 정원 예술가 앙드레 르 노트르(AndréLe Nôtre) 등을 초빙하여 50년이라는 긴 세월과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여 지은 이 궁전은 결국 프랑스 재정의 위기를 가져왔고 그 위기는 프랑스혁명으로 이어지니 역사의 변증법은 참으로 정교하다는 생각이 든다.


루이 14세 당시 루브르 궁을 두고 새집으로 이사를 간 이후 이 파리 외곽의 작은 구릉지역이었던 베르사유는 어느 날 갑자기 프랑스의 심장부가 되었다가 혁명이 나고 폐허로 변했다가 엉뚱하게도 프로이센 왕 빌헬름 1 세가 독일 황제로 즉위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정원은 250만 평이나 되는데 걸어서 구경하기에는 최소 3~4일은 걸릴 넓이다. 요즘은 전동카트를 대여하는 편리함으로 모처럼 카트를 몰고 루이 14세만큼은 아니지만 여유롭게 정원 이곳저곳을 둘러볼 수 있었다. 하지만 루이 14세의 별궁 그랑 트리아농과 마리 앙트와네트의 별궁 프띠 트리아농은 수리 중인 관계로 볼 수 없었는데 베르사유 궁의 핵심을 놓친듯하여 몹시 아쉬웠다.


황금색으로 치장된 건물은 어찌 보면 참으로 촌스럽고 또 어찌 보면 참으로 위엄 있어 보이는 이중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황금이라는 것 자체가 매우 이중적이기는 하다. 천박함과 고귀함이 앞 뒤로 밀착되어 있는 황금의 이미지는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거의 변하지 않는 이미지이다. 동시에 황금은 피를 부르는 중요한 동기가 되기도 하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 황금에 눈멀어 자신을 희생시켰는가를 생각해보면 황금빛으로 빛나는 베르사유의 건물들은 인간 욕망의 표상인 동시에 잔인함과 비정함 그리고 몰가치의 증거이기도 하다.


궁전 앞에 서 있는 루이 14세의 동상은 이렇게 화려하고 장대한 궁전에서 영원히 존재할 것 같았던 그도 사실은 영원히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웅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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