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지수
明鏡止水
부처의 경지를 이해하는 것은 凡人인 나로서는 거의 불가능하지만 여러 가지 자료를 바탕으로 추론해보면 부처가 이룬 경지의 일부는 아마도 모든 번뇌가 멈춘, 혹은 사라진 절대 자유의 상태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렇다면 이 ‘멈춤 또는 그친(止)’ 상태는 과연 무엇인가? 부처의 경지로서 멈춤과 그침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인지하는 멈춤과 그침이 가진 이미지, 즉 동적인 것으로부터 정적인 것으로 변했다는 것 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히 아닐 것이다.
부처의 경지에서 이해될 수 있는 ‘멈춤’은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는 것으로서, 과거로부터 진행되어 온 것이 현재의 일정 시점에 이르러 마침내 완전히 소멸되어 그 어떤 부분도 미래로 진행되지 않는 상태일 것이다. 미래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은 더 이상 분화하거나 감소하지 않는 상태를 말함이다.(不增不減) 역으로 이 말은 이미 모든 것이 완벽해졌으므로 더 이상의 어떤 것도 필요치 않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즉, 완전함의 또 다른 표현이 곧 멈춤, 또는 그침인 것이다. 따라서 부처의 경지는 완전함(사실 이 경지에 이르지 못한 보통의 우리는 완전함이라는 말의 실체조차도 알 수 없다.)으로 다만 표현될 뿐이다.
멈춰진 상태는 움직임이 존재하지 않는다. 움직임이 있는 순간 모든 것은 다시 진행의 상태로 되돌아 간다. 진행의 단계로 들어서면 완전함은 이내 무너지고 또다시 불완전해질 것이다. 그러면 멈춤은 그곳에서 모든 것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말인가? 만물의 이치가 그러하듯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부처는 멈춤을 재차 풀어서 설명해준다. 과거로부터 진행되어 온 모든 것이 현재에 이르러 문득 멈추어 버린다면 아무리 멈추고 싶어도 시간에 의해 밀려오는 것들을 막아낼 수가 없다. 비록 부처라 할지라도 이 緣起의 에너지를 멈추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여 부처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諸法空想!! 즉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남은 것이 없는 상태, 즉 空의 상태라고 말한다. 남은 것이 없는 상태라고 생각하는 그 생각조차도 없는(無無明, 亦無無明盡) 상태에 이르러야 비로소 그것을 멈춰진 상태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장자가 살았던 시대에 중국에는 아직 공식적으로 불교의 교의가 전파되기 전이었다. 중국에 불교가 전파된 것은 대체로(이견이 있다.) 기원전 1세기 경이라고 되어 있지만 춘추시대 말기(기원전 3세기)에 이미 민간에 전파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왜냐하면 이 시기 민간에 널리 퍼진 노장사상은 불교의 교의와 너무나 비슷한 면이 많고 기원전 3세기경에 기록되었다고 짐작되는 장자라는 책의 내용에는 불교적 내용이 많이 발견되고 있는데 이것은 이미 불교가 민간에 오래전부터 퍼져 있었음을 이야기해 줄 수 있는 근거가 된다.(실제로 전국 시대에는 초기 실크로드 - 천산 남로가 개척되기 시작했고, 그 길을 따라 불교가 자연스럽게 전파되었을 것이다.)
장자 내편 다섯 번째 이야기 덕충부의 처음 에피소드 왕태 이야기 중간쯤에 나오는 이 '명경지수'도 깊이 생각해보면 불교의 교의가 반영된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흐르는 물은 인간의 번뇌를 표현한다. 흐르는 물은 소리를 내고 바위에 부딪혀 포말이 생기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기도 하며 또 어떤 경우에는 멈춘 듯 깊고 고요하게 흐르는 듯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엄청난 움직임이 있다. 명경지수란 이 모든 것이 정지된 상태 즉, 모든 움직임이 멈추고 그 멈춤의 본질인 물이라는 대상조차도 소멸된 상태일 때 비로소 거울처럼 나를 비춰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장자는 공자(가상의 공자)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人莫鑑於流水(인막감어류수) : "사람은 흐르는 물을 거울삼지 않고
而鑑於止水(이감어지수) : 잔잔한(멈춘) 물을 거울삼습니다.
唯止能止衆止(유지능지중지) : 잔잔하기 때문에 다른 모든 것도 잔잔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