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ght of Italy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는 본래 우르비노(이탈리아 북동부의 작은 백작령)의 군주의 사생아로 태어났으나 몬테펠트로 백작(아버지)의 관용 덕에 서자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 시기의 서자였던 그는 유년시절부터 파란만장한 삶의 풍랑 속을 이리저리 떠 다니게 된다.
롬바르디아 전쟁(이탈리아 북부의 평원 이름에서 유래된 북부의 패권전쟁 약 30년 동안 계속됨)에서 우르비노가 패하게 되자, 고작 11세의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는 베니스 공국과 만토바 공국에 인질로 끌려가 왕자지만 온갖 사역에 시달리게 된다. 다만 만토바에서 체류하던 2년간 당대 최고의 학자였던 “Vittorino da Feltre(비토리노 다 펠트레, 1378~1446) ”의 아카데미에서 인문학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그나마 왕자라는 신분이 도움을 준다) 이때의 교육은 이후 삶을 살아가는데 에너지와 그의 성품을 구성하는 근간이 된다.
그 뒤 부친의 사망으로 16세의 적자인 이복동생이 작위를 승계하였으나 불과 몇 개월 만에 암살당하자, 22세의 페데리코가 본의 아니게 그 작위를 물려받게 된 것이었다. 물려받은 작은 영토(우르비노)가 빚더미였던 덕분에 이전부터 해오던 용병 생활을 그만둘 수 없었다. 이후 그는 자신을 따르는 수 백 명 기사들과 함께 돈을 위해서라면 의리나 명분에 관계없이 자신의 몸값을 치르는 자의 편에 서서 전장을 누볐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는 패배를 몰랐고 그 덕에 엄청난 몸값을 자랑하게 되었지만 우르비노를 위해서 그의 용병 생활은 50대까지 계속된다. 그렇게 해서 벌어들인 돈으로 낙후된 우르비노를 정비하고 영토를 넓힐 수 있었으며, 우르비노 경제의 바탕이 되었다.
그는 부하에게 자애로웠으며 단 한 푼의 돈도 자신의 영달을 위해 허비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부하들은 그에게 충성을 다했으며 마침내 자신의 영토 우르비노를 가난에서 구한 것은 물론이고 부자나라로 만들게 된다.
마침내 1474년 52세되던 해 교황 식스투스 4세는 그간 교회를 위해 싸운 공로를 인정하여 그에게 로마교회 군대의 수장의 직함과 함께 공작 작위를 수여한다. 즉 우르비노가 백작령에서 엄연한 공국으로 발전한 것이었다. 공작이 사는 궁전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두칼레(Palazzo Ducale)는바로 두카(공작)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탈리아에는 현재 약 20여 곳의 두칼레 궁전이(가장 유명한 곳은 베니스와 피렌체) 있는데 19세기 말까지 통일될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러한 공국의 독립적 지위(왕국)때문이었다. 어쨌거나 교황의 든든한 배경과 함께 군사적, 외교적으로 강력한 우르비노 공국을 구축한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는 말 그대로 용병으로 나라를 일으킨 것이다.
이러한 드라마틱한 삶의 주인공 페데리코가 ‘성공한 용병 장군’이 아닌 "the Light of Italy"라고 불리고 동시에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를 개화시킨 공로자로서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용병에서 어떻게 르네상스 최고의 현군으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젊은 시절 그를 가르친 현인 “비토리노 다 펠트레”의 영향이었다. 부유해진 나라를 더욱 부유하고 강력한 나라로 만드는 것은 문화의 힘이라는 것을 페데리코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여러 석학들과 예술가들을 우르비노로 초청하여 연구의 공간과 비용을 제공하였던 그는, 당대의 여러 화가들에게 성군의 모델로 그려지게 된다. 이 작품 또한 그가 늦게 얻은 그의 아들, 귀도발도와 함께 그려졌는데 젊은 시절 전장에서 잃은 오른쪽 눈을 가리기 위해 옆모습으로만 그려지게 되었다.
53세의 페데리코는 훈장을 단 갑옷을 입고 군주의 의자에 앉아, 코덱스(책의 형태를 보이는 것) 형태의 필사본을 읽고 있는 인문주의자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책 읽는 장군의 모습은 바로 문무를 겸비하고 있음을 상징하고 있는데, 코덱스는 당시 매우 고가임은 물론이고 이러한 물건을 가진 것만으로도 인문학적 관심을 그대로 보여주는 중요한 코드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늦은 나이에 얻은 상속자 아들 귀도발도가 함께 그려졌는데, 교황의 승인을 받은 정식 승계자임을 나타내는 홀(막대기)을 들고 있다.
이 작품은 스페인 출신의 Pedro Berruguete(페드로 베루헤테, 1450 – 1504)의 작품으로 베루헤테 역시 이 시기에 우르비노에 초청되었던 많은 예술가들 중 한 명이었다. 베루헤테는 이탈리아에 미술 공부를 위해 갔다가 현군을 만나 이 그림을 그에게 헌정하였고 현재 이 그림은 Galleria nazionale delle Marche, Urbino(우르비노에 있는 델 마르체 국립 미술관)에전시되어 있다. 이 그림은 템페라(계란 노른자로 안료를 섞은 물감)로 나무판에 그려져서 500년이 지난 지금도 그림의 상태가 매우 좋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