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물들고 있는 단풍태양은 움직이지 않는 별이 아니다. 태양의 공간 속도는 초속 약 19.5km나 된다. 그 태양의 주위를 8개의 행성이 보텍스(Vortex ; 소용돌이) 운동을 하며 따르고 있다. 그 가운데 지구라는 행성은 초속 약 29km의 속도로 태양을 돌고 있으며, 그 엄청난 운동의 결과 지구에 사는 우리는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된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움직이는 지구의 속도와 달리 우리에게 계절의 속도는 다만 대기의 온도로, 그리고 그 대기의 온도에 영향을 받은 자연의 변화로 아주 느리게 느리게 다가 올 뿐이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지각되는 四時의 바깥은 거대하거나 또는 지극하다. 정밀하고 또한 완벽한 균형인 우주와 시간과 공간의 질서 속에 미약하게 존재하고 있는 인간이지만, 역설적으로 우주와 시간과 공간을 나타내는 거의 유일한 존재가 인간일 것이다. 이러한 거대한 흐름 위에 있는 우리 인간은 情理의 존재다. 정리의 존재란 시간 혹은 공간 속에서 나름의 규칙을 설계하고 또 그 설계에 대한 목적을 욕망하고 의미를 부여하여 그로부터 새로운 질서까지 창조하는 인간 의식의 작용을 의미한다.
찰나[i]에 생겨나고 찰나에 사라지는 계절이라는 이 절대 시공간은 영겁[ii] 동안 계속되어 왔고 또 계속될 것이다. 다만 지금 현재 나의 눈에 들어온 이 광경은 찰나와 영겁이 절묘하게 교차하는 순간일 뿐이다. 정확하게 누구의 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런 시구가 있다. “未知明年在何處(미지명년재하처) 不可一日無此君(불가일일무차군)” 즉 약간의 의역을 하자면 “내년에는 어찌 될지 모르니, 지금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이 매우 중요한 사람이다.”라는 뜻이다. 君을 사람으로 보아도 되고 아니면 특별한 상황으로 보아도 된다.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고, 이 순간은 억겁의 시간 속에서 찰나의 순간이며, 동시에 그 찰나의 시간은 억겁의 시간으로 변해가니 지금 당면한 사람과 상황이야말로 우주에서 가장 소중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엄청난 속도와 정교한 질서의 끝에 매 달린 저 빛나는 붉은 잎은 영겁의 시간 속에 찰나의 순간이며, 그 절묘한 시공간의 교점에 내가 서 있는 것이다.
[i] 산스크리트의 '크샤나(kşaṇa)'의 음역, 순간(瞬間)이라는 뜻. 약 0.013초(아비달마대비바사론의 계산에 따르면)
[ii] 산스크리트 칼파(kalpa)의 음사(音寫)로 겁파(劫波), 갈랍파(羯臘波)라고도 불림. 영원하고 긴 시간에 대한 개념이다. 참고로 힌두교에서 1갈랍파는 43억 2천만 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