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해진 일상에 비가 온다. 내 감각의 주변부가 습기에 조금 말랑해지면서 평소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떠오른다. 지극히 동물적 감각인 촉각, 시각, 청각, 후각의 정보가 결국 이러한 상황을 만들어낼 것이다. 인간의 모든 사고 작용이 이와 같이 주변부의 영향이 지배적이라면 차원 높은 철학적, 종교적 제의들도 사실은 별반 다르지 않을, 동물적 감각의 기초 위에 형성되지 않을까?
나로부터 또는 나에게서 출발하는 행동이나 사고가 대 부분 이전의 정보에 의존하는 것이라면 결국 독창적인 발상은 어렵고 단순히 환경적 기제에 대한 반응이라는 동물적 반사 수준으로 전락하고 마는데, 그렇게 생각해 보니 스스로 거창하고 무게 있다고 느꼈던 모든 것이 일순 가벼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스스로 이러한 한계를 느낀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동물적 감각을 넘어서고 있다는 증거로 볼 수 있기도 하여, 이내 변증법적 미궁으로 빠져들고 만다.
하지만 비록 동물적이라 해도 나의 사고는 매우 복잡하다. 나의 의식 속에는 아득한 석기시대로부터의 인류의 경험과 그 후 시간에 의해 축적된 과학적 진리들,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의 역사적 문화적 편견들, 그리고 앞으로의 세계에 대한 나의 잠재된 철학적 전망과 예측들이 포함되어있기 때문이다.
부가하여, 인간은 스스로의 생각에 대한 강력하고 주체적인 비판을 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동물과는 살짝 다른 길을 걷게 되었고 그 차이가 오늘날의 인류가 있게 했다. 자신에 대한 비판이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과 전망, 나아가 그것으로부터 창조되는 모든 가치관 전부를 돌아보고 이곳저곳에 널브러져 있는 각각의 지식을 체계화하는 동시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과정이다. 그리하여 가장 진보적인 수준에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고양시키는, 끝없는 자아성찰과 그로부터 이루어져야 할 자아실현의 바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