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한 산성'

by 김준식

영화 남한산성


참담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그리고 영화를 보고 있는 내내 참담하고 또 참담했다. 우리의 조상들이 어찌 저리도 어리석고 졸렬했단 말인가? 물론 영화였고, 또 소설가 김훈의 원작이었기 때문에 극적인 요소를 많이 포함시켰다손 치더라도 우리 조상들의 모습은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했다.


영화의 역사적 배경


우리의 역사 교과서 속에 최명길과 김상헌, 김상헌과 최명길은 매우 작은 부분으로 묘사되어 있어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보통의 사람이라면 소상하게 그들의 삶을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최명길은 주화파이며 김상헌은 척화파라는 정도의 상식만 있을 뿐이다. 소설이나 영화적 장치로서 두 사람의 대결은 상당히 효과적으로 다가온다.

두 사람은 각각 동일한 사태를 극단적으로 다르게 본다. 거의 망해가는 중이었지만 여전히 중원의 주인이었던 명을 섬기며(임진왜란 당시 원조했다는 사실과 이전부터 부모의 나라로 여겼던 명나라.) 만주에서 무섭게 일어난 후금(이후 청이 됨)을 오랑캐로 보는 사람들의 대표자 김상헌, 어떤 타협도 결연히 거부한다. 이와는 반대로 이미 명은 그 운명이 다했다고 보고 새로운 세력인 청을 중국의 강자로 인정하며 백성의 안위를 위해 타협하자는 최명길, 이 두 사람의 뒤에서 흔들리는 왕 인조, 그리고 졸렬하고 참담하며 어리석은 중신들.

인조(박해일 분)

인조라는 왕은 1623년 서인의 일파였던 김유(영화에서 당장 때려죽이고 싶은 영의정으로 등장한다.) 이귀 등이 광해군을 몰아내고 일으킨 반정으로 왕위에 등극한다. 광해군이 왕권 강화의 방법으로 일으킨 계축옥사의 피해자였던 김유 등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세운 왕 인조는 사실 왕으로서의 위엄이나 정치 외교적 감각이 제로인 상태에서 급작스레 왕이 되었으니 자신을 세운 서인들의 말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반정 공신 중에는 이 영화의 주인공 최명길도 있었다.

후금, 즉 淸은 만주족이 세운 나라다. 그들의 조상 나라인 금은 신라 마의태자의 이야기가 스며있는 나라 이기도하다. 물론 정통한 학설은 아니지만 청나라 왕족의 성은 애신각라(愛新覺羅)씨인데 이 네 글자를 자세히 보면 신라를 기억하고 사랑한다는 뜻이 된다. 주류 사학자들 대부분은 이 이야기를 끼워 맞춘 이야기라고 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나는, 개인적으로 이 이야기를 믿고 싶어 진다. 어쨌거나 그들이 우리를 침략했고, 이 침략은 우리 역사에서 정묘, 병자호란으로 기록되고 있다.


서인들이 인조반정을 하면서 내 건 슬로건은 성리학적 질서의 회복이었다.(광해군이 젊은 계모 인목대비를 폐하고 어린 이복동생 영창대군을 죽인 패륜을 반정의 주요 원인으로 삼았다.) 그런 이들이 성리학적 주군이었던 명나라와의 군신관계를 끊고 오랑캐의 나라 청나라와 군신관계를 맺으라는 요구를 수용할 리 만무했다. 어쩌면 청은 이런 사실을 이미 알고 그것을 침략의 계기로 삼았을 것이다. 국토는 폐허가 되고 사대부와 관료들, 고급 군인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안위를 챙기는 당시의 사태가, 삼백 년이 지난 지금 이 나라의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니 참담하다고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었다.



실리와 명분


최명길이 내세우는 것은 어떻게라도 백성을 삶을 지키고 동시에 우리 땅을 살려내고자 하는 실리적 이유였다.(역사적 사실과 부합하든 또는 그렇지 않던) 비록 왕이라 하더라도 백성을 위해서라면 어떤 상황에서든 땅에 머리를 조아리고 목숨을 구걸해야만 한다고 영화에서 이야기한다. 이 말이 당시의 복잡한 정치적인 상황에서 나왔다 하더라도 백 번 천 번 옳은 말이다. 이를테면 먼저 살고 보자는 이야기다. 일단 살아야 왕도 있고 나라도 있고 정치도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맞다! 그러나 당시의 분위기는 최명길의 이야기에 회의적이었다. 그놈의 명분이 발목을 잡았다. 명나라는? 성리학은? 개국 초에 세운 사대의 명분은? 따라서 사대부들은 동요한다. 머리를 굴려보아도 뚜렷한 대안이 없다. 비록 전쟁 중이었지만 당장 목숨이나 삶의 거대한 위협이 없던 그들은 척화를 주장하는 김상헌의 이야기에 더 솔깃해한다. 그래 명분이다! ‘명분에 죽고 명분에 살자’라고 하는 거창한 기치가 아니라 그저 비굴하게 명분에 다리만 걸치고 가보자는 것이 당시 사대부와 양반들의 태도였을 것이다. 김상헌은 비장하게 이야기한다. 치욕스러운 삶보다는 차리리 명분을 위해 죽을 수 있어야 한다고. 물론 그도 맞다. 명분 없는 삶이 삶이더냐! 그러니 흔들리는 왕, 인조는 더더욱 흔들린다. 거기에 이런 상황을 가중시킬 고립된 한 겨울 남한산성이 아닌가!


오합지졸인 조선의 군사들이 쓰는 무기가 대장장이에게 고쳐지고, 그 대장장이를 믿는 사대부 김상헌, 마침내 그 비천한 신분의 대장장이에게 왕의 격서를 외부에 전하라는 밀명을 주는 사대부와 정작 그 밀명을 받아 들고 전해준 자의 신분 때문에 의심하는 조선의 군인과 관료들을 묘사한 영화적 장치, 이 모든 것이 모양만 바뀐 채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기분은 오직 나만의 기분인가?


김상헌(김윤석 분)
최명길(이병헌 분)

두 신하


칸(汗)이라고 부르는 청나라의 황제(당시 우리나라에 왔던 청나라의 황제는 홍타이지, 즉 청의 제 2대 황제 태종) 앞에 일국의 군왕이었던 인조가 땅바닥에 머리를 조아린 사건은 이 나라 역사에서 삼전도의 굴욕으로 잘 알려져 있다. 최명길의 주화론이 받아들여지고 그것을 위한 첫 번 째 조건이 바로 왕이 칸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었다.


김상헌이 그렇게 반대했던 청과의 화의는 왕의 굴욕을 시작으로 조선 민중 50만이 청으로 끌려갔고 조선의 두 왕자(소현세자, 봉림대군 – 후일 효종)도 청에 볼모로 잡혀갔다. 엄청난 전쟁 배상금과 조공, 그리고 조선말까지 이어지는 청의 갑질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물론 김상헌도 끌려갔고 화의를 주장했던 최명길도 청에 끌려갔다.(사실 김상헌과 최명길은 16세 차이가 난다. 당연히 김상헌이 나이가 많다. 나중에 청의 선양에서 다시 만나 이런 시를 주고받는다. 먼저 최명길이 湯氷俱是水(탕빙구시수), 裘葛莫非衣(구갈막비의) 끓는 물이나 얼음이나 둘 다 물이고, 가죽옷이나 거친 옷이나 모두 옷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으니……라고 하자, 운자를 이어받아 김상헌은 雖然反夙暮(수연반숙모), 詎可倒裳衣(거가도상의) 비록 아침저녁이 바뀌었다 하여도, 윗옷과 아랫 옷을 바꿔 입을 수는 없는 것……이라고 받았다. 둘의 극명하게 대조되는 사태인식을 볼 수 있다.


사족


이병헌(최명길 역)과 김윤석(김상헌 분)은 대체로 호연이었다. 박해일(인조 역)은 이 두 사람에 비해 역할이나 연기가 조금 떨어지는 듯했지만 세 명의 주연 배우가 영화를 지지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다만 최명길과 김상헌의 연배를 비슷하게 설정하였는데 오히려 실제 나이로 보이게 분장했더라면 두 사람의 대비가 더 분명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김상헌은 영화 초입에서 뱃사공을 왜 죽였을까? 지금도 의문이다.


* 역사적 사실인 관계로 영화 내용을 미리 공개하는 것은 거의 없음.

** 사진은 네이버에서 가져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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