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2017. 10. 22.

by 김준식


1. 숙의 민주주의


핵 발전소 정책(탈핵 정책)에 대한 대통령 선거 공약이 파기되면서 탈핵 정책 전체에 영향을 주게 되었다. 90일 동안의 공론화 과정 끝에 결정된 이번 결정은 여러 가지 숙제와 의미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이번 공론화 과정처럼 상당한 시간을 가지는 일련의 절차적 민주주의의 과정을 숙의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宿意의 사전적 의미는 오래 생각을 품고 있는 것인데 문제는 얼마간의 시간을 오래로 보는 가이다. 90일 간을 숙의로 본다면 그럴 수도 또 아닐 수도 있다. 이명박근혜 정부 시절 정부 정책의 결정에 절차적 과정을 무시한 것과 비교하면 숙의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그렇게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10만 년이 지나야 안전해진다는 원자력이라는 거대한 문제를 단지 90일 동안에 결정하는 것을 숙의라고 말하기는 분명 곤란한 점이 있다. 다만 지난 90일 동안 정부 정책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시민들의 민주적 절차에 의해서 결정되었다는 것에 충분히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사실 이것도 문제는 있다. 원자력 사업을 하고 있는 초거대 기업의 대표들과 맞선 상대는 조직화되지 못한 군소 비핵, 탈핵 단체들이었다.)


한반도 남쪽 해안에 현재(2017년 2월 말 기준) 25기의 핵 발전소가 운용 중에 있고 그중 가장 오래된 고리 1호기는 44년 8개월째 운영 중이다. (http://energyjustice.kr/에너지 행동 정의 홈 페이지 참조) 그리고 현재 건설 중이거나 계획 중인 발전소가 11개나 된다. 절차적 민주주의 정당성이 확보된다 하여 핵 발전소의 안정성이나 안전이 담보되는 것은 아닌데 단지 공론화의 결과 핵 발전소 건설을 계속한다는 것은 핵 발전소 주위에 살고 있는, 그리고 종국에는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거대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원자력이 가지는 위력과 그 해악에 대하여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 다만 현재의 경제적 혹은 다른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원자력이 가지고 올지도 모를 미증유의 재난을 민주주의와 공론이라는 이름으로 그저 방치하고 만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2. 교원 승진 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실천교육 교사모임(회장 정성식 – 이리동남초 교사)에 한쪽 다리를 비스듬히 걸치고 회비를 냈더니 오늘 책 두 권이 택배로 왔다. 한 권은 『교사, 교육개혁을 말하다』 와 『비고츠키 교육학』이다. 눈물 나게 고맙고 반가운 마음에 『교사, 교육개혁을 말하다』 를 숨 쉴 틈 없이 읽었다. 한 번도 마주 한 적은 없지만 페이스 북으로 만난 밀양 송진초등학교에 재직 중이신 박순걸 교감 선생님의 글에 크게 공감하면서 나의 생각을 적어 본다.


학교 현장에서 교감 교장을 관리자라고 부른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무엇을 관리하는가? 교육을? 아니면 아이들과 선생들을? 전자를 관리한다면 과연 그분들이 그 정도의 능력과 품성을 갖추고 있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하고 후자를 관리한다면 이 역시 엄청난 노력과 에너지가 드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나의 30년 교직 생활 중에 그나마도 교육을 관리하는 관리자와 학생과 교사들을 관리하는 관리자를 본 적이 별로 없다. 사실 관리라는 말 자체가 교육이라는 구조와 딱 들어맞는 단어가 아니다. 사전적 의미로 관리는 지휘, 통제라는 의미가 더 많다. 교육이 지휘 통제라는 말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데, 여전히 학교의 교장 교감을 관리자라고 부르는 것은 여전히 학교가 누군가에 의해 지휘되고 통제되는 장소와 집단이라는 것이며 이는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교육이 아니라 일률적인 지휘와 조정에 더 무게를 둔 말임에 틀림없다.


분명하게 이야기하자면 교육은 관리의 대상이 아니다. 학생이나 교사는 어쩌면 관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학생이나 교사도 관리할 수 없고 또 해서도 안된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 중 승진하여 관리자가 된 사람들을 간혹 만나게 된다. 그들 중에는 이미 교장이 된 사람도 있다. 박순걸 교감 선생님께서 책에서 이야기하는 내부형 공모 교장제나 교장 선출보직제에 대하여 이미 교장이 된 이들의 혐오감은 대단하다. 교감이 되기 위해 온갖 고난을 다 겪어내고(가족과 떨어져 벽지 근무와 각종 점수의 획득, 그리고 최우수 근무평정을 위해) 천신만고 끝에 마침내 교감 연수를 받아 교감이 되어 다시 6~7년을 보낸 후 드디어 교장이 되었는데, 어느 날 문득 이런 고생을 하지 않고 교장이 되는 이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관리자라는 이들에게 내가 받은 느낌의 전부는 오로지 자신의 승진을 위해 자신의 점수만을 관리해 온 경험 외에는 이렇다 할 교육적 견해는 없어 보이는 존재들이다.(내가 아는 사람들에게만 국한한다. 그렇지 않은 분들도 분명 있고 또 많을 것이다) 이들이 교육을, 아이들이나 교사들을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최소한 없어 보인다.


그들, 즉 이미 교장이 된 그들은 교감으로서 교장 눈치나 보는 행위를 관리자로서의 품성으로 생각하며 교사들이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학교가 유지되도록 하는 것을 관리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렇게 정년까지 별문제 없이 조용하게 지내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생각하는 것이 지금의 학교 최고 관리자인 교장들의 모습이다.


박순걸 선생님이 글의 끝 부분에 밝힌 “관리자가 되는 게 매력적이지 않은 학교로의 변화”를 보면서 현재의 제도와 현재의 분위기라면 교감 선생님의 이 제언은 안타깝고 죄송스럽지만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다소 비관적인 생각이 들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