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의 명상

by 김준식

2017년 11월 4일 주말 아침 자고 일어 나니 복잡한 꿈을 꿨는데 도저히 실체를 알 수 없다.


장자 이야기의 백미이며 동시에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가 호접몽이다.


昔者莊周夢爲胡蝶(석자장주몽위호접): 언젠가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어,

栩栩然胡蝶也(허허연호접야) :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된 채,

自喩適志與(자유적지여) : 유쾌하게 즐기면서도

不知周也(부지주야) : 자기가 장주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俄然覺(아연각) : 그러다가 문득 잠에서 깨어나 보니,

則蘧蘧然周也(칙거거연주야) : 자신이 분명히 누워 있는 것이 장주였다네.

不知周之夢爲胡蝶(부지주지몽위호접): 그가 꿈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胡蝶之夢爲周與(호접지몽위주여) : 나비가 꿈에 그가 된 것인지 몰랐다네.


그런가 하면,


근대 서양 철학의 출발점에 선 프랑스 출신의 위대한 철학자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 1650)는 장자가 이런 말을 던지고 표표히 떠나고 거의 2000년이 지난 뒤 그의 책 『방법서설』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제 오직 진리 탐구에 전념하려고 하므로, 앞에서 했던 것과는 반대로 조금이라도 의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전적으로 거짓된 것으로 간주하여 던져 버리고, (懷疑) 이렇게 한 후에도 전혀 의심할 수 없는 것이 내 신념 속에 남아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방법적 회의의 출발이다.


데카르트는 잘못된 생각이나 잘못된 모든 것은 거짓이나 혹은 꿈으로부터 출발한다.( everything and every thought becomes false and illusory)라고 이야기한다.(장자가 말하는 꿈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방향에서 출발하기는 한다. 꿈과 현실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과 동시에 꿈은 회의의 대상일 뿐이라는 데카르트의 생각은 장자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비슷한 부분도 많다.)


“내가 감각하는 사물들이 정말로 존재하는가? 혹시 이것들이 상상의 산물은 아닌지,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내 감각을 넘어서 물리적 대상들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할 길은 없다.” 보라! 데카르트의 꿈에 대한 이러한 가설은 놀랍게도 장자가 말한 꿈과 너무 많이 닮아 있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여기서 또 다른 방향으로 진전한다. 즉 꿈을 거짓의 범주로 묶고 그 범주의 모든 것을 회의(의심)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어버린다. 여기서 데카르트는 동양의 장자와 결별하는데(장자는 끝내 꿈의 모호함과 현실의 모호함을 등치 시키고자 했고, 그 결과 현실의 모든 것이 ‘무위’ 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도구로서 꿈을 이용하였다.) 모호함을 유지하는 장자적 꿈은, 현재에도 여전히 모호한 상태로 우리에게 남아 있지만 데카르트는 이 모호함을 끝내 분석하고 분류해 낸다.(그것이 옳든 또는 틀리는 문제는 논외로 한다.)


그는 “우리가 깨어 있을 때에 갖고 있는 모든 생각은 잠들어 있을 때에도 그대로 나타날 수 있고, 이때 참된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알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정신 속에 들어온 것 중에서 내 꿈의 환영보다 더 참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가정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반드시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존재가 하나의 꿈일 수 있다고 의심한다. (다시 장자의 그것과 비슷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가 인격적 자아, 신체적 주체, 몸과 마음의 결합체가 아닌 생각의 주체라는 점에서 반성 능력과 내적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회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데카르트는 판단한다. 여기서 신의 문제가 등장한다.(이 부분에서 여전히 기독교적 틀을 아직은 깰 수 없었던 데카르트를 본다.) 즉 회의의 대상이 아닌 ‘나’라는 부분을(반성 능력과 내적 능력을 가진) 그는 ‘관념’이라고 상정하는데 결국 이 ‘관념’이 신적인 것이라고 데카르트는 분석한다.


2017년 11월 4일 아침 나는, 장자의 꿈도 데카르트의 꿈도 아닌 번잡한 일상의 꿈을 꾸었고 또 그 꿈을 깬 뒤 번잡한 일상의 아침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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