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의 명상

문득

by 김준식
은행 잎 하나 떨어지는 순간

문득


복잡한 일들이 매일매일 일어나고 그 속에 나의 삶이 유지된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이런 모든 일들은 미리 예정된 일이거나 계획된 일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언제나 새로운 장이 펼쳐지는 것 같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니 예상하지 못하는 것이나, 혹은 예상하는 것조차도 막상 어떤 일이 일어나면 생경스러워진다. 한 때의 자신감이나 용기, 무모함 등은 이제 내 주위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나 보다.


나이 듦이란 결코 어리석어지는 것은 아닐 텐데, 날로 무디어지고 날로 얕아지는 이 불안감은 무엇이란 말인가?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내가 경계해야 할 마음자리인지도 모른다.


부처는 이 상황을 Avidyā라고 불렀다. Avidyā 를 우리말로 풀이하면 無明이다. 무명이란 단순하게 풀이하자면 어리석음이다. 치(癡), 미(迷), 우치(愚癡), 무지(無知), 무지(無智) 등으로 풀이될 수도 있다. 요즘 나이 들어가는 나의 상태가 Avidyā의 상황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무엇을 모른다는 것일까? 그 무엇에 대하여 동 서양은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는데 그것은 곧 인류 철학 발전의 역사요, 동시에 인류 문명사의 발전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그 무엇’을 우리는 여전히 ‘그 무엇’으로 부르고 있다.


종교적 범위를 벗어난다면이 무엇은 ‘진리’라는 말로 변할 수도 있고 ‘본질’이라는 말로도 바뀔 수 있는데 중세가 끝날 무렵 40대 중반의 스피노자가 그의 위대한 책에서 밝힌 Substance(=a particular kind of matter with uniform properties, 즉 균일 한 특성을 가진 특별한 종류의 물질) 일 수도 있고 60대 후반의 라이프니츠가 말한 Monad(=a single unit; the number one. 단자) 일 수도 있다.


그것이 뭐든 간에 매우 중요하고 깊숙하게 존재하며 동시에 간단하다는 말인데….. ‘간단하다’는 말은 이해가 용이하다는 말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부처의 진리나 스피노자나 라이프니츠가 이야기한 논리도 쉽게 이해되어야 하는데 모두 다 엄청난 이야기를 쏟아부어 이 간단함을 설명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요령부득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역시 부처의 말에 기대고 싶어 진다. 무명!


복잡한 세계에서 우리가 단순 해지는 방법은 의외로 쉬운지도 모른다.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해 버리면 된다. 즉, 간단해지는 것이다. 그것이 본질이자 핵심이다. 그런데 우리는 결코 간단해지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간단함으로 돌아갈 길을 잃어버렸거나 이미 거기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11월이 거의 다 지나가는 쌀쌀한 주말 아침, 무명속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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