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조계산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by 김준식

가을 조계산(선암사에서 송광사로)


언제부터인가 가 보고 싶었던 곳이지만 늘 이런저런 일로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마침내 이번 주말 선암사에서 조계산을 넘어 송광사로 가는 길에 가게 되었다.


높이래야 겨우 800m도 되지 못하지만 남도의 산이 그렇듯이 아주 낮은 곳에서 시작하는지라 제법 여러 번 오르막을 오르고 또 내리막을 만났다. 지도상의 거리는 약 6,5km지만 실제로 걸은 거리는 9,7km 정도를 걸었다.


산을 오른다는 것은 항상 그러하지만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이다. 자신의 두 다리로 고도를 높이는 일은 매우 숨차고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산을 오른다. 물론 거기에는 인간이 가진 오만함과 모험심 등이 작용하는 부분도 있지만 산을 오르고 난 뒤 남는 것은 위대한 자연에 대한 경외와 그로부터 생겨나는 겸허함이다.

가을이 이제 막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조계산은 참으로 다양한 색의 향연을 보여준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아무리 셔터를 눌러도 육안으로 보는 그 아름다움을 담을 수는 없다. 그것은 카메라라는 기계가 우리의 영혼을 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뛰어난 사진이라 하여도 우리의 가슴에 와 닿는, 있는 그대로의 풍경이 주는 감동에 미칠 수는 없는 법이다.

고개를 오르고 내려가면서 문득문득 내 삶을 반추해본다. 인생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나 자신의 삶에 있었던 크고 작은 고난과 기쁨을 떠올려 본다. 산에 오르는 이유가 어쩌면 이런 작은 것에서 출발하는지도 모른다. 가을 산이 주는 느낌은 안도와 풍요, 그리고 질서와 겸손이다. 바스러지는 낙엽을 밟으며 걷는 길에서 우리는 편안함을 느끼고 붉거나 노란 색색의 향연에서 계절이 주는 풍요를 느낀다. 더불어 겨울을 준비하는 질서와 그 질서에 완벽하게 대비하는 자연의 겸허와 순응을 본다.


송광사 입구를 가로지르는 작은 냇물 위에 전각 그림자가 떠 있다. 하루의 산행이 주는 감상을 녹여 시를 지어 본다.

反影

寂滅本性皆無變 (적멸본성개무변) 적멸한 본성은 변하지 않으니,

萬攝愚賢相轉挾 (만섭우현상전협) 모든것이 그 속에서 나투고 사라지는구나.

深深微妙不可境 (심심미묘불가경) 깊고 묘하여 경계를 알 수 없으니,

泛影小樓泆從勰 (범영소루일종협) 물위에 뜬 누각, 생각 따라 일렁일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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