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87
1. 업보(Karma)
영화의 박처장(김윤석 분)은 공산 이데올로기에 엄청난 반감을 가진 것으로 설정되어있다. 영화 속에서 박처장 스스로 자신이 왜 이런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가를 설명한다. 그는 일제시대 북한에서 지주계급의 아들이었는데, 해방이 되자 공산주의자들이(김일성) 북한을 점령하여 지주 계급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가족 모두가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지주 계급에 대한 농민들의 복수는 일제 36년 동안 수탈당하고 핍박받은 민중들의 분노였고 그것은 일제시대 친일 지주들의 농민과 민중에 대한 만행의 결과였던 것이다. 결국 돌고 도는 업보인 셈인데 이 업보는 다시 남북 분단 이후 남, 북한에서 이념 대립의 형태로 변모한다.
북한에서도 김일성 일파가 그들의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이념의 문제는, 남한에서 좀 더 다양한 갈래로 발전하여 부당한 권력의 유지에 봉사하게 된다. 영화의 박처장과 같은 북한 지주 계급의 잔당들(대 부분 친일의 전력이 있는)이 남하하여 이승만 정권의 유지를 위해 헌신한다. 이승만 정권은 이들의 복수심과 공명심을 이용하여 정권연장과 체제 안정의 수단으로 이념을 이용했고, 뒤 이어 등장한 박정희 전두환 군사 독재 정권들은 이 방법을 그대로 답습하였다. 그 극단적 사태가 바로 영화처럼 고문으로 사람을 죽이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2.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
1961년 12월에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나치 전범 칼 아돌프 아이히만(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실질적인 책임자)의 전범 재판이 열렸다.
1946년 2차 대전 패배 이후 아이히만이 은신처에서 탈출한 뒤 오랜 세월 연기된 재판이었다. 1960년 이스라엘 비밀 정보기관이 그를 체포한 뒤에야 정의의 실현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스라엘 국민 법정에서 판사 3명의 주재로 열린 이 재판은, 취재기자가 너무나 많아 공개 법정으로 실시되었다. 또한 재판 과정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다.
거기서 아이히만은 자신은 단지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누가 보아도 불충분하고 어이없는 자기변명이었다. 결국 아이히만은 모든 혐의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1962년 5월 교수형에 처해졌다. 재판을 직접 재판정에서 지켜본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이름의 보고서를 작성하였고, 거기서 그녀는 유명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을 하게 된다.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 출신의 철학자(현상학자 – 유명한 하이데거의 제자이자 연인)로서 히틀러 집권 당시 독일에서 거주하다가 유대인으로 체포되었다. 곧 프랑스로 망명하여 반 나치 운동을 전개하였다.
먼저 아렌트는 피고석의 아이히만에게서 “실제로 저지른 악행에 비해 너무 평범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녀가 보기에 그는 피에 굶주린 악귀도, 냉혹한 악당도 아니었다. 그냥 “우리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중년 남성이었다.”
그 사실은 오히려 아렌트를 더 소름 끼치도록 했다. 아이히만은 특별한 인간이 아니었다. 어떤 이념에 광분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는다만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했을 뿐이었다. 아이히만은 “나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되풀이했다.
그리고 칸트의 정언명령을 인용하며 상부의 명령은 지키는 것은 자신의 도리라고까지 말했다. 비록 그 내용이 수백만의 죄 없는 사람들을 살육하는 것이라도! 자신이 저지른 일과 자신의 책임을 연결 짓지 못한 채,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는 아이히만에게서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이끌어낸 것이다.
‘악’이란 뿔 달린 악마처럼 별스럽고 괴이한 존재가 아니며, 사랑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우리 가운데 있다. 그리고 이념의 광기로든 뭐든 우리에게 악을 행하도록 계기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멈추게 할 방법은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일상성에 묻혀, “누구나 다 이러는데” “나 하나만 반대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나는 명령받은 대로하기만 하면 ~” 등의 핑계를 대며 스스로 생각하기를 그만둔다면, 평범하고 선량한 우리도 언제든 거대한 악을 저지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보다 선하게 만들고 싶다면 어떤 이념이나 지도자를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 속에서 고문을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평범한 집의 아들이자 아버지이며 남편들이다. 아침에 출근하여 업무를 보고 오후에 퇴근하는 지극히 평범한 가장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고문이 일과이며 그것이야말로 애국하는 공무원의 일이라는 자부심을 가졌을 것이다.이지점이 바로 악의 평범성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3. 시민으로서의 생각
스스로 시민(민주주의의 핵심 주체로서 인간의 존엄에 대한 의미와 공동체의 의미를 깨닫는 존재)이 된다는 것은 바로 이 '악의 평범성'을 깊이 인식하고 매 선택의 순간에 깊은 숙고와 숙의, 생각을 수반하여야만 한다. 그 생각이란 외부의 어떤 이념과 지식의 잣대가 아닌 진솔한 자신과의 치열하고 엄숙한 대화인데 이 철저한 자기반성 없는 생각(비록 아무리 고상하고 우아한 생각이라 하더라도)이 사회에 만연하다 보면 우리 모두는 늘 이 ‘악의 평범성’에 지배당할지도 모른다.
용기를 준다는 허명 아래 자신의 실수에 지나치게 관대하고 자기반성에는 너무나 인색한 우리들은 아닌가? 그리하여 마침내 자기반성보다는 자기연민에 빠지고 자기와의 엄숙한 대화보다는 현재 우리 사회에 만연한 힐링 전도사들의 달콤한 몇 마디 위로의 말에 위대한 자신의 가치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2018년 문재인 정부가 집권 두 해째를 맞이했다. 여전히 적폐 청산은 진행형이다. 대한민국에서 이 엄중하고 치열한 순간을 살고 있는 시민의 철학적 자질은, 자신의 내부에 엄정하고 독자적인 자아비판의 장을 형성하고, 그곳의 소리에 귀 기울여 그로부터 생성된 자신의 의무를 기꺼이 수행하려는 의지가 전면적으로 내면화되어 있는가와 비례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의 내부는 이미 아이히만처럼, 영화에 등장하는 지난 시절의 고문 경찰관처럼 ‘악의 평범성’으로 나아갈 충분하고 완전한 준비를 갖춘 상태일지도 모른다.
사진은 네이버에서 가져 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