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준식 Mar 14. 2018

봄의 제전

한옥 처마와 산수유 그리고 하늘이 절묘하다.


봄이 무르익어가고 있다. 밤이 되어도 기온이 낮지 않다. 기이하고 이상한 발레 음악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듣는다.  


나치에 협조한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그의 책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 1927년)’의 말미에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음악은 진리를 은폐하고 있다는 다소 의아한 의견을 피력했다. 여기서 은폐라는 말은 독일어 schließen 의 잘못된 번역으로 보이는데 근접하는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가두어 놓다’로 풀이하는 것이 적합해 보인다. 


‘가두어 놓다’ ‘는 말은 진리가 음악 속에 자리 잡고 있고 그 진리는 존재의 의미로 치환될 수 있다는 이야기로 풀이할 수 있다. 


하이데거적 방법으로 음악적 진리의 현현을 내재적 장치로 감춘 음악가로 스트라빈스키를 들 수 있다.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은 참 야릇하다. 그래서 찬 반 양론이 분명하다. 그리고 난해하다. 하지만 뭔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이유로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은 지금도 꾸준히 연주되고 또 듣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은 대단히 전위적이다. 


前衛라는 용어는 프랑스어 아방가르드(avant-garde)를 번역한 것이다. 아방가르드는 군사용어로, 전쟁에서 본대에 앞서 적진의 선두에 나가 적의 움직임과 위치를 파악하는 척후병을 뜻한다. 아방가르드라는 용어가 예술에 전용(轉用)되어 앞으로 전개될 새로운 예술을 탐색하고 이제까지의 예술 개념을 바꿀 수 있는 혁명적인 예술경향이다. 


중세 이후 근세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다행스럽게도 예술은 종교적 관점에서 성립되고 또 발전하였다. 하지만 종교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예술은 부르주아의 전유물이 되었고 장식적이고 충실한 현상의 재현과 묘사적인 테크닉에 따라 예술의 가치를 평가했다. 사진이 등장하면서 회화는 길을 잃었고, 축음기가 발명되면서 음악도 거대한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의 틀을 부정하고 그러한 기준이 지배해온 숨 막히는 현실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바로 아방가르드 운동의 시작이었다. 


이탈리아의 미래파 운동과 스위스의 다다이즘 등은 예술이라는 거대한 흐름의 시대적 척후병으로서 기존의 틀에 박힌 합리적 이성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스트라빈스키는 그런 흐름에 동참하여 이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했을 것이다. 봄의 제전(The Rite of Spring, 1913년 작)은 올해로 105년째 되는 음악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HeXxzJy2FGI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