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간다.
‘건너간다’라는 노래가 있었다. 90년대가 끝나가던 그즈음에 발표된 이 노래는 정태춘의 굵고 짙은 음색과 사이사이 들리는 첼로 소리가 인상 깊었던 노래다.
노래 가사 중에 ‘환멸의 90년대’라는 말이 나온다. 환멸이란 한자로 幻滅, 즉 환상이 사라지는 것이다. 사전적으로는 ‘꿈이나 기대나 환상이 깨어짐. 또는 그때 느끼는 괴롭고도 속절없는 마음’으로 풀이된다. 정말 90년대는 그러했다. 1993년에서 1998년까지 집권했던 김영삼 시대는 이 땅에서 민주화 운동을 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환멸의 시대였다. 김영삼이 휘두른 위대한 배신의 칼에 우리는 선혈을 쏟으며 그렇게 스러져가고 있었다.
환멸의 시대는 지극히 상대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우리의 꿈이 깨지고 환상이 무너졌을 때 희망과 행복을 느낀 집단이 있었다. 90년대를 기점으로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린 천박한 신흥 자본가들이 그들이었는데, 그들은 일제시대 친일 관료나 하급 공직자들의 후손들로서 그들의 바로 윗대는 해방 공간에서 반민족주의자에서 친미 자유주의자로 절묘하게 변신하여 일제 시대의 부를 고스란히 간직했던 자들이었다. 천박한 자본가들은 이들의 후손과 그 후손들을 비호하거나 또는 후손들에게 비호되었던 세력들이다. 때 마침 70년대 개발독재 시절에 불어 닥친 토지 자본의 광풍에 힘입어 자본을 거머쥔 이들은 90년대 하나의 세력으로 굳어졌고, 그들이 지지했던 정치세력은 조상의 과오를 덮고 자신들을 비호해주는 비민주적이며 동시에 자본 친화적인 군사독재의 잔당들이었다. 그 잔당들에 의해 한 때 민주주의의 신봉자였던 김영삼은 대통령 자리에 눈이 멀어 배신의 칼을 들었고 90년대는 그렇게 우리를 환멸로 몰아갔다.
그 후,
두 번의 민주정부는 다시 저들을 환멸로 몰아갔을 것이다. 통일을 위한 큰 발걸음에 힘 입어 잠시 동안 금강산 관광도 가능했고 또 개성에서 남북한이 같이 일구는 경제공동체가 탄생하기도 했다. 이 시기는 90년대 우리를 환멸로 몰아넣었던 세력들에겐 분명 환멸의 시대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뒤 환멸보다 더한 절망의 시기가 다시 10년 동안 우리를 지배했고, 우리는 환멸과 절망을 곱씹으며 새로운 날을 위해 노력했고 마침내 지금의 정부가 들어서게 되었다. 그리고 2018년 4월 27일, 새로운 시대의 문이 조금 열렸다. 90년대와 그 뒤 10년 동안 우리를 환멸과 절망에 빠뜨렸던 세력의 잔당들은 이번 일로 어쩌면 깊은 환멸에 빠져 있을지도 모른다. 저들이 왜 통일을 두려워하고 기피하는지에 대해 말하자면 이유는 천가지 만가지도 넘을 것이다.
그 세력들 중 홍**라는 작자는 일본의 모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지금의 위대한 민족적 사건을 폄훼하고 심지어 저주에 가까운 망발을 하는가 하면 또 다른 잔당인 안**는 오로지 좁고 낡은 정치적 프레임으로 이 민족적 사건을 폄훼하고 무시하려 하고 있다. 아마도 환멸이 이들을 이런 상황으로 몰고 갔을 것이다.
정태춘의 노래를 들으며 다시 환멸의 그 시대를 떠 올려 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4pyY3qDKk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