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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Oct 26. 2018

2018년 골의 서문

올해의 표지

微吟緩步(미음완보)!


그렇다. 50대를 넘기며 스스로 이 정도의 경지에는 이르고 싶었다. 글자 그대로 하면 미음완보는 ‘작은 소리로 읊으며 천천히 거닒’이 사전적 뜻이다. 이 뜻을 그대로 두고 여기에 욕심을 내서 스스로 이루고자 했던 경지는 이곳저곳의 풍광을 보며 보는 대로 시를 만들고, 그 시를 작은 소리로 읊으며 천천히 거니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늘 그러하지 못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과한 욕심이었다. 微吟은 고사하고 사실 緩步조차도 어려웠다. 언제나 무엇에 현혹되고 언제나 쫓기는 일상 속에서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걷는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는 사이 벌써 2017년 11월에 만든 ‘재유’에서 다시 일 년의 작업을 묶겠다는 약속의 날이 문득 다가오고 말았다. 


한시는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쳐 나오는 결과물이다. 더군다나 그 속에는 옛날 위대한 시인, 혹은 인물들의 시의 운율이나 내용, 그리고 그들의 일화를 차용한 용사(用事)가 있어야 한다. 다산 정약용은 ‘용사(用事)’없는 한시는 시골 농부의 글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 용사를 떠올리고, 운을 맞추고 평측을 맞추는 일은 이래 저래 어렵고 성가신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시는 시다워야 한다. 함축과 은유가 살아 있어야 하며, 치열함과 지극함이 공존해야만 한다. 그러니 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가? 하지만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것은 한시라고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오류 투성이다. 하지만 어떤가? 내 시가 평석 할 정도의 가치도 없음이요, 공개적으로 출판하여 돈을 버는 일도 아니니 크게 탓할 바는 아니라고 스스로 위로한다. 


오래전부터 이런저런 글들을 쓰고 익히며 감정을 精鍊(정련)하여 시를 쓰고자 했으나 결과물은 항상 뚱딴지같은 잡글 수준이었다. 2005년부터 시작한 이 무모하고 어리석은 작업이 이제 13년째를 넘긴다. 하지만 진보는 더디고 과정은 갈수록 힘이 든다. 한계를 느끼는 정도가 아니라 매번 포기하고 싶어 진다. 특별히 이 일을 요구하는 사람도 또 특별한 대가도 없는 이 일은, 오늘 그만두어도 누구도, 아무도 안타까워하지 않는 일이다. 다만 스스로 조금 슬플지는 모르겠다.


2018년에도 약 80편 이상의 잡다한 내용의 글을 지었다. 한 달에 6~7편을 지었다. 절대 우주의 한 모퉁이, 지극히 한정된 공간에서 시간에 따라 변화해가는 자연의 모습에 역시 자연의 일부로서 자신을 투영하여 글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유한한 자신의 시간을 촘촘히 살아내고자 하는 스스로의 간절한 소망이다. 이런 종류의 일에 마음을 쓰니 스스로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때도 가끔 있다. 하지만 가치를 따지는 것 자체가 사실은 매우 무용한 일이다. 그저 생존의 과정으로 생각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2018년의 표제어 滑疑(골의)는 본문 맨 첫 글 뒷부분에 자세히 설명되지만 滑疑之耀(골의지요)의 줄임 말로서 그윽하고 희미한 빛이란 의미를 가진다. 『장자』 ‘제물론’에 있는 말이다. 이를테면 ‘골의’는 ‘道(도)’의 다른 표현이다. 희미하고 그윽하여 쉽게 분별할 수가 없는 것이 ‘도’라는 이야기다. 하여 2018년에는 이 희미함을 그대로 느끼고 따라잡기 위해 노력한 한 해로 정하여 글을 지었지만 결국 ‘도’는 보이지 않고 오히려 안타까움만 뭉게뭉게 늘어나고 말았다. 


『장자』 32편 列禦寇(열어구)에 ‘도’에 대하여 ‘장자’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道를 알기는 쉽고, 그것을 말하지 않기란 어렵다. 도를 알면서도 그것을 말하지 않는 것이 하늘의 세계로 들어가는 방법이고, 道를 알고서 그것을 말해버리는 것은 인위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옛사람은 하늘의 세계로 갔고 인위의 세계로 가지 않았다. 2018년 한 해 ‘도’를 알고자 했던 나는 ‘장자’의 표현대로라면 인위에서 여전히 허우적거리고 있었고 심지어 그것이 ‘도’ 인지도 모른 체 시간만 보내고 만 것이다.  


2018년 11월 명신고등학교 2학년실에서 중범 김준식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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