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by 김준식


주말이 지나갔다. 일요일 저녁이 되면 주말을 장식하던 상투적이어서 몹시 가벼운 일상의 언어들이 대체로 위로 뜬 채 시간과 함께 쓸려 가버린다. 그리고 남는 것들은 몇 개의 사실들, 그리고 다음 주에 맞이해야 할 즐겁지 못한 몇 개의 현실들이다.


이런 일들이 유독 나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어서 그나마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내 문제는 언제나 내 문제이기 때문에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2019년 1학기 3월 내내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리 반 ○○○에 대한 고민이다. 삼십몇 년이나 교사를 한 나로서도 도대체 원인을 알 수 없는 그 아이의 행동이 가슴을 지그시 누르고 있다. 아직도 여전히 아침저녁 조례와 종례에 참석하지 않는다. 가끔 어쩌다가 앉아 있는 경우가 한두 번 있었지만 나에 대한 배려는 아니었다.


불러서 이야기하면 말을 하지 않고 그냥 고개만 끄덕인다. 담배를 피워 3번이나 발각되어도 별 반응이 없다. 그 아이의 어머니는 나에게 보낸 장문의 문자에서 아이는 심성이 착하니 선생님이 선처해 달라는 부탁뿐이다. 부모 눈에는 착하지 않은 아이가 없는 것인가? 우리 교실에 있는 23명의 아이들에게 미안해지기 시작한다. 담임이 그 아이를 어찌하지 못하는 것을 공정하지 못한 처사라고 생각하는 눈치들이 나를 조금 불안하게 한다.


공정한 담임의 입장이라면 벌써 그 아이는 어떤 식으로든 징계를 받아야 하는데 1학년 때부터 그런 아이이니 조금 더 지켜보자는 것이 다른 선생님들의 의견이다. 그렇게 한 달이 다 지나가고 있다. 만약 징계를 받게 된다면 그 아이가 1학년 때 부모와 학교의 불편한 다툼이 재현될 공산이 매우 크다.


대체로,


이쯤 되면 예전에는 폭력적인 상황이 연출되기 일쑤였다. 언어 또는 물리적 폭력이 주는 폐해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으니 나의 태도가 반 아이들에게는 갈수록 공정해지지 못하는 것처럼 비치는 모양이다. 불러서 타이르고 나면 그 다음날 다시 똑같아지는 그 아이의 행동에 인간적 분노를 느끼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교사가 아닌가! 분노는 교육적 용어가 아니다. 비고츠키 선생의 말씀처럼 아직 천 번도 해 보지 않았는데……


그러니 일주일 내내 머리가 무겁다. 그리하여 주말도 무겁다. 내일 아침 교실에 가면 그 아이 자리에 그 아이가 앉아 있었으면 참 좋겠다. 화요일이면 수학여행을 가는데 어찌해야 할지 참 난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