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깊어지고 있는 4월의 산은 연 초록의 세상이다. 진달래 꽃은 이미 떨어졌고 벚꽃도 절정을 넘어 바람 따라 꽃잎을 하염없이 흩어놓는다. 꽃잎을 스친 바람은 소나무를 타고 올라 이제 막 새 잎이 나는 나무 끝을 훑으며 작고 여린 잎 사이사이로 불어 가늘고 높은 바람 소리를 낸다. 종다리, 박새, 딱따구리도 바람을 타고 제 목소리로 소리를 내며 때로 하늘을 날고 또 때로는 새 둥지를 짓기 위해 나무에 앉는다.
색깔과 소리가 어울려 봄 산은 두터워지고 있다. 나무는 나무대로 있는 힘껏 뿌리로부터 물을 빨아올리고 이미 여기저기 핀 자줏빛 혹은 희거나 노란 봄 꽃은 위대한 번식의 여정에 서 있다. 욕망 없는 번식이야 말로 우주적 사건이다. 즉 존재의 원인이자 순환의 과정인 셈이다. 부처께서는 식물을 육도윤회의 과정에 포함시키지 않으셨는데, 나의 좁고 아둔한 식견으로 보는 식물은 육도윤회하는 다른 존재와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한자로는 ‘猪牙花(저아화 영어로는 Dog-tooth Violet이다.)’로 불리며 우리말로는 ‘얼레지’라고 불리는 봄 꽃이 있다. 3월 중순쯤 햇살이 약간 비치는 산 사면에 별안간 제법 큰(아기 손바닥 크기) 잎 하나를 불쑥 내민다. 녹색 바탕에 희미한 검은 반점이 있는 잎은 어쩐 일인지 하나만 나온다. 마치 혀를 날름 내민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3월 말쯤엔 큰 잎이 땅에서 나온 그 지점에서 야윈 꽃 대가 오르는데 이때 꽃 대를 중심으로 큰 잎의 대칭점에 작은 잎이 또 하나 올라온다. 그리고 다시 3~4일이 지나 햇살이 따뜻해지는 오전이면 여윈 꽃대 위에서 찬란한 꽃이 핀다. 다섯 개의 연보라 색 꽃잎을 모두 뒤로 젖히고 정작 꽃은 땅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이 얼레지의 꽃말은 ‘질투’다. 비슷하거나 혹은 조금 엉뚱하게 느껴진다.
산 길을 걸으면 여러 사람들과 마주친다. 주로 나와 연배가 비슷하거나 조금 많은 중 장년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들과 나는 자연에서 에너지를 얻기 위해 산길을 걸을 것이다. 나와 같이 부부가 같이 오는 경우부터 혼자서 오거나 남자 여러 명, 여자 여러 명이 어울려 오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 중 가끔씩 휴대폰이나 MP3 같은 기계를 이용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흘리며 걷는 경우를 만난다. 산은 조용해서 음악 소리가 잘 퍼져 나가 멀리서도 잘 들릴 뿐 아니라 좁은 길에서 이런 분들 뒤에 서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분들은 좋아하지만 나는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음악을 내내 들으며 걷는 경우도 있다. 맨 처음 이야기한 것처럼 산에는 자연의 소리가 있다. 바람소리, 새소리, 잎들과 햇살이 만나는 소리, 잎들끼리 마주치며 내는 소리가 있다. 그 어떤 위대한 음악도 이런 자연의 소리에 견줄 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분들은 내내 자신들이 좋아하는 세속의 음악을 산속에 흘리고 다니신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니지만 자연의 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그분들이 약간 안타까울 뿐이다.
이 아름다운 4월의 산이 불타버린 강원도를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하다. 산불이 나서 목숨을 잃고 재산을 잃은 사람들, 더불어 상처 입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 더불어 거기 사는 움직이는 작은 풀벌레로부터 제법 큰 짐승들, 그리고 움직일 수 조차도 없는 나무들이며 꽃들은 모두 타 죽어 버린다. 그 모든 존재들을 위해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