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오 부채

by 김준식

2019년 6월 9일 단오부채를 쓰다.


하루 종일 단오 부채를 만들었다.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빈 부채를 사서 글자를 몇 자 쓰고 나의 인장을 찍었다가 맞는 표현이다. 올해는 그림을 뺏다. 본래 그림을 그리는 것에 별반 소질도 없거니와 이런저런 일로 바빠 그림 그릴 틈이 없었다. 이미 단오가 지났는데(6월 7일) 월요일에는 여러 선생님들에게 나눠드려야 해서 그냥 글씨만 쓰기로 했다.


이렇게 단오에 부채를 나누게 된 것은 거의 10여 년이 다 되어 간다. 40대 후반에 시작한 이 일은 내 주위 사람들에게 여름이 시작되는 단오를 맞이하여 시원함을 선물하는데 작은 의미가 있다. 해를 거듭하다 보니 드리고 싶은 대상이 늘어 몇 년 전에는 100여 개의 부채를 그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부채를 드려도 요즘 부채 쓸 일이 없는 탓에 각자의 서랍 속에 아니면 방 한편에 두고 만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내 손을 떠나는 순간 이미 내 물건이 아닌 탓에 마음을 접는다. 하여 올해는 같은 학년 실에 계시는 8분과 오래 인연을 맺어온 몇 분에게만 드리고자 한다.


그 외에 나의 외우 김정완과 기타 몇 분에게는 올해 부채를 생략하려 한다. 별 이유는 없다. 다만 이미 많은 부채를 보냈고 한 해쯤 쉬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남자용 부채는 여자용에 비해 조금 크다. 면적이 넓은 관계로 글자를 많이 써야 한다. 올해는 사공도의 24시 품을 옮겨 썼다. 여자용은 작아서 나의 5언 절구 한시 중 몇 편을 골라서 썼다. 한자를 쓰다 보니 뜻을 물어보는 사람이 가끔 있지만 사실 부채에 무슨 글이 쓰이던 바람만 잘 일면 그만이다. 오로지 쓰는 나의 정성일뿐이다.


부채를 주는 것은 전통적으로 바람을 일으키는 물건이라 조심스럽다. 하여 매우 친밀하여 마음이 소통하는 사람과 주고받는 선물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하염없이 주기만 한다. 지난해 사천에 계시는 고월 이용우 선생님께서 부채를 보내오셔서 참으로 감읍한 일이 있었다. 그 외 어떤 보답도 바라지 않음으로 내 마음의 경계를 삼는다. 무엇인가 다른 이에게 자신이 만든 물건을 주는 일은 오랜 수련이 필요하다.


처음 나의 정성이 든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주면 이런 마음이 생긴다. 오로지 내 경우만은 아닐 것이다. 이를테면 ‘내 것을 함부로 다루지는 않나?’ ‘왜 고마움이 없지?’ ‘내 물건을 어디다 두었지?’ ‘쓰지 않으니 버렸나? 아니면 처박아 둔 건가?’ ‘…..’ 온갖 마음이 다 생긴다. 특히 내가 많은 노력을 기울여 만든 물건일수록 더 많은 생각이 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오로지 나의 마음일 뿐, 내 물건을 받는 사람은 아무런 생각이 없다. 따라서 물건을 주는 순간 이런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내 손을 떠나는 순간 이미 내 물건이 아니다.’


올해도 내 부채로 잠시나마 시원한 여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로지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