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포터 마지막 시리즈

by 김준식

복잡한 국제관계와 피곤한 국내 정치, 그리고 형식적인 52시간 노동, 겨우 몇 백 원 올린 최저임금, 그런 것들과 함께 살고 있는 나. 문득 옛날 영화 한 편이 생각났다.


어구 전철(語句轉綴) Anagram이란 알파벳을 이리저리 뒤섞어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는 일을 말한다. 고대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로, 중세 유럽인들은 라틴어로 이런 말장난을 즐겼다.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이 놀이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해리포터 시리즈가 끝난 것이 2011년이니 이제 10년이 다 되어 간다. 거기 나오는 해리포터의 반대쪽 우두머리 볼드모트라는 단어도 아나그램으로 만들어진 단어인데 Lord Voldemort(볼드모트 경)의 어릴 적 이름이 'Tom Marvolo Riddle이다. 이 문장 전체를 아나그램 하면 → I am Lord Voldemort'가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선악의 경계가 분명한 시대는 영원히 볼 수 없다. 그런 시대는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았고 또 존재할 수도 없다. 그러나 영화에서 만큼은 분명 이런 세계가 존재한다. 어쩌면 우리가 이런 영화를 보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해리포터 영화의 마지막 편에 대한 이야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해리 포터는 마법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던 볼드모트를 제거하고 평화를 지켰다. 복잡한 과정이었지만 결말을 위해 모든 것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관객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그것을 지켜보는 영화였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결말을 모르기 때문에 영화적 수사와 문법에 집중해야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이미 결론은 알고 있고 어떻게 거기에 도달하는가를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마법, 그리고 파괴의 거부감


‘마법사의 돌’로부터 이어졌던 여러 가지 의문들에 대한 답을 제공하기 위한 작가 혹은 감독의 노력은 영화 내내 이어졌고 관객인 나는, 거의 10년 동안의 기억을 더듬어 그 조각들을 맞추느라 여념이 없었다. 서사영화라고 보기에는 주인공의 캐릭터가 조금 약한 부분이 있고 모험 영화라고 보기에는 분명한 선악구도 때문에 주저되는 면이 없지 않다. 많은 상징들이 마법이라는 유용한 도구를 통해 관객들의 상상을 자극하는 동시에 영화적으로도 치밀한 구조를 만들어 이미 알고 있는 결론의 약점을 극복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최근 영화가 대부분 그렇지만 파괴와 폭력은 이 영화에서도 주류를 이룬다. 마법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가지고 있음에도 관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려는 감독의 수단은 역시 파괴와 폭력이었다. 마법을 통한 파괴와 전쟁영화의 파괴가 전혀 다르지 않음에 관객인 나는 뭔지 모르는 약간의 실망감을 느꼈다. 물론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했다. ‘필요의 방’에서의 불이라든지 ‘호그와트’를 지키려는 마법사들의 마법 보호막 장면이 그것이었는데 전체적인 파괴의 양상은 일반 영화와 다를 바 없었다.


서양의 세계관, 그리고 역설


마법은 서양의 중세를 거치며 기독교의 기적과 대비되어 악마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특히 이 영화의 전편들에서 꽤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각종 마법 약들은 사라센 문화, 즉 이교도였던 이슬람교도들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악마를 배척하는 기독교 문화가 깊게 뿌리내린 서양에서 마법학교라는 독특한 무대와 거기서 일어나는 각종 마법에 대한 이야기가 오늘날 이렇게 사랑받고 있음은 전체적인 흐름으로 보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기독교도들에 의해 자행된 중세의 마녀사냥은 보통명사가 될 만큼 서양 사회를 지배했다.


그만큼 비기독교적인 세계관이나 생각은 철저하게 금지당했다. 근대에 들어와 그러한 분위기에 다른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 사람은 J.R.R. Tolkien(존 로널드 루엘 톨킨)이 아닐까 싶다. 그는 반지의 제왕을 통해 새로운 세계와 동시에 철저히 비기독교적 이야기로 일관했다. 물론 그 배경에는 옛날 그들의 조상들이 살았던 땅인 북구 즉, 노르웨이 핀란드 지역에 전승되어 온 노르만 족의 신화가 모토가 되었다. 그 뒤에 등장하는 Clive Staples Lewis(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로 이어지는 판타지 소설의 맥이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로 만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기독교를 신봉하고 있지만 그들은 언제나 비기독교적인 환상의 세계와 마법의 세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현재의 서양세계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단서들 중 하나일 것이다.

마법들


라틴어로 된 주문을 외우면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고 특별한 나무로 만들어진 마법 지팡이를 휘두르면 빛이 나와 창조와 파괴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또 특별한 재료와 레시피로 만들어진 마법 약은 의도된 일들을 이루어낸다. 이러한 마법의 세계는 보통사람인 우리에겐 너무나 매력적인 세계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마법이 없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원인과 결과가 확연하다. 오히려 현실에서의 마법은 인간의 노력의 산물이며 사랑이라는 것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이 영화는 역설적으로 말하려 했는지 모른다. 마지막 부분에 해리포터가 볼드모트의 첫 번째 공격을 받고 죽음의 경계에서 옛날 마법학교 교장 ‘덤블도어’(마이클 갬본 분)를 만난다. 그때 덤블도어는 말한다, ‘사랑이 없는 인간은 불쌍하다’라고. 영화적 수사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이 대사는 작가나 감독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상징, 그리고 장치


특정 물건에 특정인의 영혼이 연결되어 있다는 설정(호크룩스- 마법 시전자의 영혼 일부를 모종의 어둠의 마법으로 생물체를 포함한 특정한 물체에 담는 마법 및 그 물체)은 서양세계의 오랜 전통, ‘상징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로부터 북구의 신화, 그리고 여러 판타지 소설에서 많은 예를 볼 수 있다. 최근에 영화화된 ‘토르의 망치’나 ‘반지의 제왕'에서 '반지’처럼 이 영화에서는 볼드모트와 연결된 물건인 호크룩스가 있다. 그것들을 파괴함으로써 볼드모트를 약화시킨다는 설정은 판타지의 전형적인 틀을 따르는 듯하다.


나니아 연대기의 기차역과 이 영화에 나오는 기차역의 장치는 매우 흡사한데 모두 시공간을 이동하는 장치로서 ‘여기로부터 저기로의 이동’ 혹은 ‘우리의 세계로부터 저들의 세계로’ 가는 것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것이 기차라고 생각하는 것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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