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시작되고 이제 일주일이 지나 열흘 째. 더위를 이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것이다.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아주 아주 어렵고 힘든 책들을 읽는 것이다. 혹여 졸리기라도 하면 땀을 흘리는 일을 하거나 그늘진 곳을 찾아 걷거나 자연을 보면 된다. 내 퇴직 이후의 일상이 될 공산이 큰 요즘의 생활이 참 좋다.
세상은 무섭게 바뀌고 있다. 우리와 마주하고 있는 세계는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다. 일본과 미국, 중국과 러시아의 움직임 속에 우리는 또 북한과 마주하고 있다. 어쩌면 이런 상황일수록 고요한 마음자리로 사태를 판단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 염천에도 고공농성을 하는 노동자들과 뜨거운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지금의 내가 조금은 미안하지만 마음만은 치열하게 공부하고 있으니 곳곳에서 맡은 바를 다하는 셈이다.
월요일부터 불교 인식론에 관련된 이러저러한 책들을 읽는다. 고백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나의 무지에 대하여 스스로 놀란다. 그나마 방학이 되어 이런 책들을 읽을 시간이 생겨 참으로 다행이다. 읽으면서 메모해 둔 몇 가지 이야기를 소개한다.
1. 現量 과 比量
불교의 인식 논리학에서는 우리가 앎을 획득하는 방법에 現量(현량)과 比量(비량)의 두 가지가 있다. 현량은 ‘직관’이고 비량은 ‘추리’다. 예를 들면 불이 타오를 때 눈으로 이를 보거나 몸으로 온기를 느끼는 것은 현량을 통한 것이고, 멀리서 솟아오르는 연기를 보면, 느낄 수는 없지만 그곳에 불이 있을 것이라고 아는 것은 비량을 통한 것이다. 이를테면 현량은 ‘감관을 통한 직접적인 앎’이고 비량은 ‘사고 작용을 거친 간접적인 앎’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중국 선 불교 제6조 慧能(혜능)은 제5조 弘忍(홍인)으로부터 衣鉢(의발)을 전수받았으나 대중의 시샘으로 박해를 받아 남쪽으로 도피했다. 그 의발을 빼앗으려고 뒤쫓는 자들 중에 무사 출신의 발 빠른 慧明(혜명)이란 자가 있어 뒤쫓아 왔다. 이에 혜능은 혜명을 직접 만나 이렇게 물었다.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고 들어 보시오. 나의 의발을 찾아 멀리 달려온 이러한 때 그대(혜명)의 본래면목은 어떤 것이오?” 혜능의 한 마디 물음에 문득 깨달음을 얻은 혜명은 혜능을 향해 삼배를 올렸다. 이때 혜명의 깨달음이 直指人心 見性成佛(직지인심 견성성불)이고, 이후 선가에서 본래면목이란 말을 자주 쓰게 됐다. 여기서 본래면목은 혜능이 가진 의발을 뺏으려는 마음을 비롯한 온갖 생각들을 다 떨쳐낸 고유한 자기,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자기를 뜻한다. 즉, 우리의 본래 모습, 중생이 본디 지니고 있는 순수한 심성을 말한다.
이 이야기에서 혜명이 깨달음은 현량을 통해서 일까? 아니면 비량을 통해서 일까?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니면 혜명의 독립적인 證得(증득)일까?
2. 진공묘유
불교의 인식론은 기이하고 좁은 통로로 연결된 미로처럼 느껴진다. 眞空妙有(진공묘유)라는 말이 있다. 허공을 잡을 수 있을까? 잡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허공이 없는 것이 아니다. 텅 비어 있으나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진공묘유’다. 이것은 뫼비우스 띠처럼 ‘없다’와 ‘있다’가 결국은 일치되어버리는 논리적 모순 상황이 되고 만다. 명제의 참과 거짓을 구분해야 하는 서양 논리학으로 풀어내기에는 매우 곤란한 부분이 있다.
진공이어야 묘유가 존재할 수 있다. 즉 비움으로부터 존재가 드러난다. ‘없음’이 없이는 無爲도 없고 존재도 없다. 존재는 사실 ‘없음’으로부터 나온다. ‘없음’은 항상 도처에 있음이다. 진공묘유는 있음(有)에서 없음(無)을 보고, 없음(無)에서 있음(有)을 보는 것이다. 방편으로 말하자면 ‘나무를 보면서 동시에 그 재를 보고, 재를 보며 나무를 사유하는 것’과 같다. 현량과 비량의 상호작용을 통해 사유할 수 있다. 동시에 금강반야바라밀다심경의 ‘色卽是空(색즉시공) 空卽是色(공즉시색)’의 경지도 이와 같다.
변화하지 않는 고정된 실체는 있을 수 없다.(無常) 모든 존재는 緣起(연기)에 따라 오고 또 간다. 즉 고정된 그 아무것도 없지만 분명히 현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것이 眞空妙有(진공묘유)인 것이다. 완전한 공은 단순한 비어있음이 아니라, 이렇듯 만물이 존재하는 자체의 원인이다. 공의 그러한 형성 작용을 진공묘유라고 부른다. 眞空은 몸이요, 妙有는 그 몸의 작용인 셈이다.
그림은 러시아 추상화의 대가 Kasimir Malevich의 작품 Red Square Painterly Realism of a Peasant Woman in Two Dimensions, 1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