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보내며

by 김준식

주말을 보내며


하루 대부분을 책상에서 보냈다. 허리가 뻐근하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다시 책을 읽는다. 일상은 수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장자』에 나오는 ‘열자’처럼 밥을 해서 먹고, 그것을 치우고 다시 고요해지면 책을 읽는다. 더위는 부채로 충분히 이길만하다. 방학이 시작된 지 일주일 동안 이렇게 보냈다. 누굴 만나기도 했고 학교도 다녀왔다. 그러나 일상의 고요함을 흔들 만큼은 아니어서 참으로 고요하게 일주일을 보낸 것 같다.


하지만 이렇듯 고요함 속에도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그 어떤 것도 시간을 묘사하지 못한다. 단지 비유될 뿐이다. 시간은 정지하지 않는다. 따라서 어떠한 구분도 있을 수 없고 또 구분될 수도 없다. 단지 우리의 필요에 의해 구분할 뿐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시간은 조금씩 정밀해지는 반면 얇아지는 것을 느낀다. 얇아진다는 것은 시간이 그만큼 조심스러워진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방학이기도 하거니와 이렇게 홀로 고요하면 고요하기 때문에 깊어진다. 나와 관계있는 모든 것을 생각해본다. 나로부터 이루어지는 것과 나에게로 향하는 것들을 차근차근 짚어보고 그것들의 강도를 생각해본다. 그 강도는 나의 의지와 무관하지 않다. 나의 의지는 나의 욕망이다. 내 욕망의 강도를 천천히 돌아보는 것, 그것은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가벼운 책임이다.


습한 바람 한 줄기가 불어온다. 이 눅눅한 바람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그 알 수 없는 공기의 흐름은 흔적도 없이 나무를 흔들고 잎을 흔들며 마침내 나에게 당도한다. 나를 지나치는 바람 탓에 내 감각의 촉수가 가볍게 흔들린다. 바람으로부터 일어나는 몇 가지의 감각적 추론은 새로운 형태의 논리적 구조를 획득하고 그로부터 다시 중첩적 기억으로 나의 뇌 어디쯤 쌓여 갈 것이다. 오늘의 기억은 지금 유효하지만 내일이 되면 유효성을 장담할 수 없다. 그것이 감각이고 기억이다. 흐려지는 것에 우리는 가끔씩 절망하지만 따지고 보면 흐려지지 않는 것을 더 두려워해야 하지 않을까?


2019년 7월 28일 밤이 이렇게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