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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Sep 27. 2016

Caïn fuyant avec ..., 1880.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Caïn fuyantavec sa famille, 1880. Oilon canvas, 380cmⅹ700cm

죄지은 자의 도망,

Fernand Cormon(페르낭 코르몽)의

Caïnfuyant avec sa famille(카인, 가족과 함께 탈출) 1880


창세기 4장 8절에 이르기를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인간의 자죄(아담과 하와의 원죄에 대비하여)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물론 더 이전의 원죄도 있었지만 카인이 저지른 이 살인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의 단면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대목이다. 물론 이 이야기를 문화사적으로 접근해보면 이야기는 확연히 달라지게 된다. 


이를 테면 아벨은 어원은 양치기(ibil – 아랍어 양치기)에서 유래되었고 카인의 어원은 대장장이 혹은 쇠를 이용하여 경작하는 사람(qyn – 아랍어 대장장이)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 학자들의 통설이다. 그렇다면 카인이 아벨을 쳐 죽였다는 것은 hunter-gatherer(사냥과 수집 생활을 하는 무리들)를 주로 하는 무리와 Agricultural producers(쇠붙이를 이용하여 경작하는 사람들의 무리)를 주로 하는 무리의 충돌에서 경작하는 쪽이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당연히 비 종교적인 설명이기 때문에 다른 견해의 가능성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이 그림을 그린 Fernand Cormon (페르낭 코르몽, 1845~1924)은 역사화가로서 당대의 유명한 역사화가였던 Alexandre Cabanel(알렉산더 카바넬)과 Eugène Fromentin(외젠 프로망탱)의 제자였다. 그는 극작가였던 아버지와 배우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예술적 재능을 발휘하게 된다. 


그는 1880년에 Atelier Cormon를 설립하고 정기적인 살롱 전을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전시회의 준비를 위한 교육을 하였는데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위대한 화가의 반열에 오른 Henri de Toulouse-Lautrec(앙리 톨루즈 로트렉) Émile Bernard(에밀 베르나르) 그리고 Vincent van Gogh(빈센트 반 고흐)가 이곳을 거쳐가게 된다.


이 그림의 제목은 Caïn fuyant avec sa famille(카인, 가족과 함께 탈출하다.)로서 카인이 아벨을 죽인 뒤 여호와(하나님)의 저주를 두려워하면서 가족을 데리고 어디론가 급히 떠나고 있는 모습을 회백색톤으로 묘사하고 있다. 맨 앞에서 길을 인도하고 있는 카인은 마치 회백색 대리석인 것처럼 그로테스크하다. 


천벌을 피해 도망가는 처지라 사냥한 짐승 몇 마리와 키우던 개 그리고, 빈 몸뿐이다. 여자들은 그나마 수레에 태우고 그 수레를 남자 몇이 끌고 있다. 기독교의 교리대로라면 이 하늘 밑 어디에 그들이 숨을 만한 곳이 있겠는가? 성경에 의한다면 인류의 시작이 이러했다는 이야기인데 지금 우리의 모습은 이것으로부터 얼마나 달라졌을까?




장자 이야기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자연의 세계는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지만 끊임없이 변화하고 그러면서도 커다란 조화를 유지한다. 또한 모든 것이 저절로 충족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은 나름대로 편안한 삶을 즐기다가 생애를 마친다. 


그러나 인간 세계는 혼란과 무질서, 투쟁과 추한 대립만이 존재한다. 인간 세계는 무언가 잘못되었다. 인간의 지혜가 새나 물고기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인가? 군주의 권력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정치가, 무장, 학자, 장사치, 강자, 약자, 부자, 빈자 모두 마찬가지였다. 결국 인간의 위험한 마음이 문제인 것이다. 


복잡하고 불가해한 인간의 마음은 변덕스럽고 불안정하다. 인간의 마음만큼 위험한 것도 없는데, 그 마음을 모든 인간이 저마다 가지고 있으니 인간만큼 위험한 존재도 없다. 


그래서 장자 또한 공자와 마찬가지로 인간관계의 규범이 되는 최소한의 도덕에 대한 필요성은 수긍했다. 그러나 도덕규범이 인간 존재의 실상을 예리하게 파악하고 인간 마음의 미묘한 사정을 면밀히 통찰하여 만들어져야 하는데, 장자는 공자가 말한 도덕규범은 그렇지 못한 것으로 보았다. 


공자 자신은 언행이 일치하고 권력에 야합하지 않은 위대한 인물이지만, 공자의 도덕적 이상주의는 선택받은 인간, 즉 군자, 지배계급의 가르침일 뿐이다. 공자 이후 공자 학파는 공허한 형식화에 치중하고 정치권력과 야합했으며, 규범과 존재, 이상과 현실의 거리를 망각함으로써 규범이 인간을 속박하는 질곡, 허위, 위선이 되어 인간의 진실을 왜곡했다. 


그들은 권력에 대해 나약했고 무분별했으며 또 변덕스럽고 심지어 매우 위험하기도 했다. 위태로운 존재인 인간의 마음을 아는데 무관심했고, 인간 삶의 포착하기 어려운 복잡함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은 측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위험하고 갑자기 변할 뿐만 아니라 끝없는 욕망을 만들고 한량없는 지각 작용을 전개시키는 거대한 괴물이다. 욕망과 지식, 이것이 인간을 위태롭게 한다. 


욕망은 인간 삶의 본질이므로 그 자체는 선이나 악은 분명 아니다. 그러나 인간을 위해 존재하여할 돈, 명예, 권력이 역으로 돈, 명예, 권력을 구하기 위한 인간으로 전도될 때, 이 욕망은 인류를 타락시키고 파멸시키는 위험한 살육의 칼이 된다. 이렇듯 인간의 안정된 삶이 비뚤어진 욕망 때문에 위협받고 손상될 때 그 욕망은 욕망이 아니라 절대 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장자 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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