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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Sep 30. 2016

Le cimetière de ..., 1881.

부조리한 인간세계

Le cimetière de Saint-Privat 1870, 1881. Oil on canvas, 232.5cmⅹ341cm

Alphonse-Marie-Adolphe de Neuville (알폰소 마리 아돌프 드 뇌빌)의

Le cimetièrede Saint-Privat(생 프리바 공동묘지의 전투) 1881


보불전쟁이 개전된 얼마 뒤인 1870년 8월 18일 프랑스와 독일(당시 프로이센)은 국경지대인 메츠(Metz)에서 10Km 떨어진 Gravelotte에서 전투를 벌인다. 이 전투가 Bataille deSaint-Privat(생 프리바 전투)이다. 지명을 따서 Bataille de Gravelotte(그라 벨로떼 전투)라고도 불린다. 이 전투에서 프랑스 진지를 공격했던 프로이센 군은 약 1시간 만에 8천 명의 전사자를 냈으나 결국 전체적으로는 프로이센의 승리로 끝을 낸다. (메츠를 프로이센이 점령한다.)


그림의 제목은"Le cimetière de Saint-Privat"는 "생 프리바의 공동묘지"라는 뜻인데 생 프리바 마을의 중심에 있는 공동묘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의 한 장면을 사진처럼 묘사하고 있다. 화가는 Alphonse-Marie-Adolphe de Neuville(알폰소 마리 아돌프 드 뇌빌 1835~1885)이다. Eugène Delacroix(외젠 들라크루아) 밑에서 공부한 아카데미 화가로서 Pas-de-Calais(파드 칼레) 주 Saint-Omer(생 오메르)의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다.


미술학 학위를 받고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해군 학교에 입교한다. 하지만 이로부터 그의 예술에 새로운 세계가 열리게 되는데 바로 데타이유와 같은 ‘군사화가’로 유명해졌다는 것이다. 1861년 파리 살롱에 데뷔한 뒤 일생 동안 전투 장면과 전쟁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데 그의 예술혼을 바친다.


이 그림에서도 뇌빌은 프리바 공동묘지에서 일어난 전투의 장면을 마치 사진처럼 묘사하고 있다. 폐허가 된 공동묘지를 사이에 두고 프로이센 군대와 프랑스 군대 사이에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고 있다. 여러 명의 병사는 이미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절명하였고, 오래된 성벽을 엄폐물로 또 몇 명의 병사들은 상대의 공격을 피하고 있다.


묘지 중앙의 작은 샛문을 사이에 두고 프로이센 군(검은색 군복)과 프랑스군(붉은색 바지)이 백병전을 벌이고 있다. 더러는 죽고 더러는 부상당한 채 나 뒹굴고 있으며 멀리 또 다른 병사들이 여기저기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다. 이런 기록적 장면은 마치 사진처럼 보이는데, 전쟁 당시의 정확한 장면을 묘사함을 생명으로 하는데 뇌빌은 매우 정교한 붓놀림으로 전투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그림이 그려진 것은 전투 후 10여 년이 지난 1881년이기 때문에 이 그림은 온전히 뇌빌의 상상으로만 그려진 그림이다.


전쟁은 어떤 이유로도 일어나지 말아야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전쟁 없던 시절은 단 한순간도 없었다. 서로를 죽이고 죽여야 하는 상대의 병사 누구도 서로에게 개인적 감정이 존재해서 일어나는 살육은 아니다. 피 흘리는 저 병사들은, 오로지 정치가들과 권력자들에 의해 장기판의 졸처럼, 혹은 바둑의 검은 돌 흰 돌처럼 아무런 명분 없이 그들의 욕망과 명예를 위해 소모되고 마는 존재들인 것이다. 이 비인간적이고 몰이성적인 일이 여전히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인류의 본성은 분명 악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장자 이야기


나를 잃고!


제물론은 소요유와는 달리 생소하고 낯선 개념이 갑자기 쏟아져 나온다. 특히 ‘吾喪我(오상아)’는 매우 특별하다. ‘吾喪我’의 吾는 객관적인 ‘나’다. 이를테면 ‘나’ 대신에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나’가 ‘吾’다. ‘我’는 주관적인 ‘나’다. 끝없이 투쟁하는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두 개의 ‘나’를 창 ‘戈’ 자 두 개를 붙여 놓은 형상으로 만든 글자가 ‘我’ 자다. 따라서 ‘吾喪我’는 주관적인 ‘나’를 장사 지내고(잊어버리고) ‘超克’ 한 상태의 지극히 객관적인 ‘나’를 보자는 것이다.


제물론은 모든 사물을 상대주의적인 관점에서 평등하게 볼 것을 주장한다. 그렇다고 전체주의처럼 획일화를 시도하는 것은 아니다. 제물론은 상대주의의 다양함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다원주의라고 부를 만큼 광범위하지 않다. 단지 어느 정도 유사한 점이 있을 뿐이다. 이런 이유로 제물론을 내용 중심으로 파악하면 매우 혼란스럽다. 아니 모호해진다. 상대주의의 다양함을 장자가 이야기하다 보니 문장이 혼란스러워지고 앞 뒤 내용의 연결이 어려워진다. 그래서 제물론은 Text(내용)가 아니라 Context(맥락) 중심으로 이해해야 한다.


장오자(장자가 만들어 낸 가공의 인물이다.)가 구작자(역시 가공의 인물이다.)에게 말한다.


“내가 자네와 논쟁한다고 해보세. 자네가 나를 이기고 내가 자네에게 지면, 진정 자네는 옳고 나는 틀린 것일까?”


“내가 자네를 이기고 자네가 내게 지면, 정녕 나는 옳고 자네는 그른 것일까?”


“정말로 모든 일에 있어 한쪽은 옳고 다른 쪽은 틀린 것일까? 아니면 둘 다 옳거나 둘 다 틀린 것은 아닐까? 나도 자네도 어떤지 알 수 없네.”


이 말은 상대주의와 회의주의의 좁은 틈 속에 있는 듯 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상대주의의 벽을 사뿐히 넘어 객관이나 주관이 사라진 절대 자유의 경지에서만 할 수 있는 말이다. 물론 언어라는 한계는 당연히 존재하지만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몰 언어적 자유의 경지가 바로 장오자의 입으로 말하여지는 장자의 이야기인 것이다.


장자 제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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