迷惑
秋雨橫天地 (추우횡천지) 가을비 천지를 가로지르더니,
細滴妙蘂懸 (세적예묘현) 가는 물방울 꽃술에 절묘하게 달렸구나.
乃溺無記空*(내익무기공) 아차 무기공에 빠졌네,
話頭隔不夾 (화두격불협) 잡을 수 없이 멀어지는 화두여.
2019년 9월 28일(토요일) 함양 상림에서 촬영한 꽃 무릇. 10월 1일 아침, 가을비를 보며 문득 그 꽃이 생각나서 글을 쓴다. 장소와 시간은 달라졌으나 상황은 별로 다르지 않다. 정신이 혼미할 만큼 아름다운 꽃의 자태에 빠져든다. 꽃술 하나하나마다 물방울들이 크기를 달리하며 맺혀 있다.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마음을 뺏기니 미혹이라 했다. 미혹은 삶 곳곳에서 나를 흔들고 그 흔들림은 결국 나에게로 돌아와 내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를 몰아가기도 한다. 마음 유지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을 실감한다.
* 無記空은 참선 중에 화두를 망각한 상태, 즉 화두를 놓친 상태를 말한다. 참선을 하면서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상황에서도 화두를 분명하게 들고 있어야 하는데, 고요함이 주는 미혹에 빠져 화두를 망각한 상태를 무기공이라하여 예로부터 수행자들이 매우 경계하는 경지이다. 한편으로 무기공에 빠진다는 것은, 오로지 고요함에 머물려는 것이다. 空에 집착해서 생각이 일어남을 지나치게 경계한 나머지,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막고 아무런 화두도 없이 멍청한 마음으로 앉아 있음을 무기공이라고 한다. 진정한 공(무기공과 비교하여)은 잠시도 머물지 않는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머물지 않는 마음이란 허공같이 텅 비어 있는 마음에 온갖 생각들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사라지는데, 그 변화무쌍한 생각과 마음을 분별치 아니하여 받아들이고 또 흘려 보내는 것을 말하는데, 이때의 마음 상태를 공이라 한다. 하지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