寂滅
本性始圓覺*(본성시원각) 본성은 처음부터 청정하니,
煩惱不可穢 (번뇌불가예) 번뇌로 더럽혀지지 않네.
昨夜洗埃塵 (작야세애진) 지난밤, 먼지 씻어내니,
了然覺闡提*(요연각천제) 천제라도 마침내 깨달으리.
2019년 10월 3일 개천절 날 오전. 태풍이 휩쓸고 간 산은 일체의 번뇌가 씻긴 청정 세상이다. 하지만 태풍으로 곡식은 쓰러지고 과일은 바닥에 떨어져 농민들은 말할 수 없이 안타깝기만 하다. 또 집을 잃고, 심지어 목숨조차 잃으니 자연은 언제나 두렵고 위압적이다. 그러함에도 태풍이 지난 다음날 보는 하늘과 공기와 햇살은 그야말로 태고의 모습처럼 맑고 깨끗하다.
산 중턱에서 멀리 바라다보니 깨달음이란 결국 내 마음속에 본래부터 있던 부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언제나 수행이 부족한 우리는 오직 외부의 자극에 의하여 마음이 일어나고, 그 마음으로 본성을 생각하니, 수미산은 높고 대오는 멀기만 하다.
* 본성시원각은 如來藏思想(여래장사상)의 핵심이다. 여래장사상이란 중생은 본래부터 여래(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추고 있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여래장이라는 말은 본질적으로 佛性(불성) 혹은 眞如(진여)와 동일한 개념이다. 여래장은, 중생은 언제나 번뇌 중에 있지만 그 번뇌에 더럽혀지지 않는, 변함없는 깨달음의 본성이다. 如來藏(여래장)은 산스크리트어 타타가타가르바(Tathāgatagarbha)를 의역한 것으로, 如來胎(여래태)가 본래 맞는 번역이다. 타타가타(Tathāgata)는 여래(부처)를 의미하고, 가르바(Garbha)는 ‘태모와 태아’를 의미한다. 태모와 태아를 唯識의 개념을 받아들여 藏으로 의역한 것이다. 따라서 여래장은 “그 태내에 부처를 잉태하고 있는 것과 또 성장하면 마침내 부처가 될 태아”라는 두 가지 뜻을 담고 있다. 달리 말하면, 여래장은 인간이 본래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부처가 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일컫는 말이다. 여래장사상을 포함하는 대표적인 경전으로는 如來藏經(여래장경), 勝鬘經(승만경), 涅槃經(열반경), 楞伽經(능가경) 등이 있다. 특히 능가경은 大乘起信論(대승기신론- 마명 저)과 함께 여래장과 阿賴耶識(아뢰야식-제8식)과의 관계를 논함으로써 唯識說(유식설)과의 융화를 시도하고 있다.
* 一闡提(일천제) 산스크리트어 잇찬티카(Icchantica): 본뜻은 ‘욕망을 가진 자’란 말로서, 쾌락주의자나 현세 주의자를 가리키는데, 불교에서는 올바른 법을 믿지 않고 깨달음을 구하지 않기 때문에 성불의 소질이나 연이 결여된 자, 불교의 정법을 훼방하고 구원될 희망이 전혀 없는 구제불능의 인간을 말한다. 결국 ‘善根(선근)을 모두 잘라 버린 자’이다. 그러나 涅槃經(열반경)에서는 일체의 중생이 모두 불성을 갖고 있다(一切衆生悉有佛性)고 해서 궁극적으로는 이들도 성불할 수 있다고 본다. 이에 대해 법상종은 이를 부정하고, 천태종ㆍ화엄종 등 기타 대승의 여러 종은 이를 긍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