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양절에 시를 짓다.

by 김준식

重陽節作詩


空山不見人 (공산불견인) 빈 산에는 사람 보이지 않고,

秋雨散点落 (추우산점락) 가을 비는 흩어져 떨어진다.

曇日靑苔上 (담일청태상) 흐린 햇살 푸른 이끼를 비추나니,

境域無四方*(경역무사방) 경계는 어디에도 없구나.


2019년 10월 7일 음력 9월 9일 중양절. 중양절은 중국 한족의 전통 명절이다. 양의 숫자 9가 겹쳐있다는 이날은 우리 세시 풍속에도 있다. 이날은 국화주를 마시고 국화전을 부쳐 먹었다고 기록되어있다. 특히 이날은 지인들끼리 시를 지어 서로의 시를 評하는 날이었다 한다. 내 주위를 돌아본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시는 무엇이란 말인가?


태풍이 지나자 서늘한 바람이 분다. 그렇게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내가 사는 세계는 나의 경계이다. 나의 경계는 내 삶의 범위와 나의 생각으로 결정된다. 내 세계의 주변부는 이미 오래되어 이끼가 끼어 頹落하고 있다. 어찌할 것인가? 나의 세계를 넓히고자 하는 것은 욕망일 수 있다. 반대로 나의 경계를 지키고자 하는 것은 또한 정체와 固守다. 이런 생각에 이르니 문득 내 경계는 의미를 잃고 나는, 확장과 유지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중양절 날 시를 지어 나의 경계를 돌아보다.


* 능엄경은 世界를 이렇게 풀이한다. 世는 흘러 옮아가는 것이다. 즉 과거 현재 미래가 곧 世다. 그런가 하면 界는 방향이다. 따라서 사방팔방이 계다. 하여 세계는 과거 현재 미래가 사방팔방으로 뻗쳐 옮아가는 그 자체이다. 불경의 이 말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상은 방향과 그 방향에 따른 확산의 과정으로서의 실체인 것이다. 한편 중국 철학, 즉 도교에서는 세계라는 표현 대신에 境域(경역)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경역은 능엄경의 동적인 뉘앙스(옮아감)는 없는 편이지만 전체적으로 비슷한 표현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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