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 무진 서원단

by 김준식

하루 종일 이런저런 생각에 휘둘리다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를 본다.


인간의 내면에 무수히 떠도는 많은 생각의 가닥들은 실상 한 개의 생각으로부터 뻗어 나온 것이기 때문에 역으로 다시 한 곳으로 쉽게 모일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언제나 그렇지만 일정한 조건만 형성되면 그 많은 생각의 갈래들은 어디로 순간 사라져 버리고 모든 것이 단순화되고 만다. 그런 상황이 되면 급속도로 판단력을 잃게 되고 마침내 본인조차 통제할 수 없는 지경이 된다. 점점 그렇게 가속도가 붙어 마침내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스스로 통제력을 상실하면 오래지 않아 거기에는 ‘자기 합리화’라는 괴물이 문득 등장하고, 그 괴물은 모든 가치를 자신의 의지와 일치시키는 均質化의 독액을 뿜는다. 오직 자신의 입장에서만 말하고 행동하며 그것이 필연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중독에 도달하여 그나마 가지고 있던 객관적이라고 불려지는 의지마저도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오랜 시간을 요구하지도 않고 또 조력자를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오직 스스로의 의지, 그것도 단기간의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도달한다.(찰나) 뿐만 아니라 결과에 대한 예측도 어렵고 동시에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스스로는 거의 알아차리지 못한다.


욕계 도솔천에 계셨던 호명 보살께서도 이 팔만 사천 번뇌에서 자유롭지 못했는데 하물며 남섬 부주에 사는 한 인간인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