序文
지극히 나의 경우이겠지만 50대 후반의 일상은 대체로 무료하고 덤덤하다.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그저 버티는 느낌인 것을 숨길 수 없다. 버티기 위해 상당한 힘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미 3, 40대의 열정이나 추진력, 50대 초반이 가지는 세련미도 이제는 많이 희미해진 지금, 그럭저럭 일상을 유지하고 사는 것 자체가 사실 만만하지 않다.
그 와중에 야속하게도 시간은 그 어떤 여유도 주지 않는다. 어제보다, 지난달보다, 작년보다 오늘, 이번 달, 올해의 시간이 나를 더 재촉한다. 거대한 질서 속에서 그저 나타났다 사라지는 존재인 나는, 이렇듯 철저하게 시간에 쫓기고 동시에 종속되어 있다.
그래서 생각했다. 마침내 사라지고 말 존재인 내가 그나마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최소한으로 유지할 방법은 없는 것인가?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것이 거대하고 절대적인 질서 속에서 역시 그 질서의 일부분으로 유지되는 존재인 내 삶의 경과를 글로 남기는 것이었다. 조금 덜 무료하고 최소한의 나의 색깔을 가질지도 모르겠다는 거의 확인되지 않는 희망을 가지면서.
그리고 짐짓 스스로 ‘나의 일상을 위대하다’라고 최면을 걸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생각나는 대로 그 위대한 순간과 장면을 기록하기로 했다.
결과는 어떠냐고? 매년 그러하지만 여전히 나의 일상은 남루하고 허둥대며 동시에 곤고했다. 위대함은커녕 평범함에도 미치지 못하는 나의 일상을 확인하지만 어차피 이도 저도 어려워졌으니 ‘위대하다’로 계속 최면을 걸기로 했다. 대안을 찾을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2019년 표제는 天倪(천예)다. 天倪는 『장자』 제2편 제물론 제4장에 나오는 말이다. 천예는 자연의 道를 의미한다. 장오자(아마도 장자 본인을 이런 이름으로 부르고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와 구작자의 대화의 내용에 등장하는 말이다. 내용은 이러하다.
장오자의 말이다. 자연의 道(즉 天倪-천예)로 조화하며, 끝없는 변화에 자신을 그대로 맡기는 것이 하늘로부터 받은 수명을 다하는 방법이다.”
『장자』 제27편 寓言(우언) 편에도 천예가 나오는데 ‘치언(매일 입에서 나오는 의미 없는 말)을 조화롭게 하는 자연의 작용이 天倪이다. 이것으로 경계 없는 도를 따르게 하는 것이, 하늘이 준 수명을 다하기 위한 방법이다.’라는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제 2019년을 향해 가는 2018년 11월,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며 글의 서문을 쓴다.
2018년 11월 中汎 金峻植 識
跋 文
2018년 11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쓴 총 67편의 글을 하나의 제목 아래 묶는다. 사실 詩라고 딱히 부를만한 근거도 없고, 또 한시의 작법에도 정확히 들어맞지 않는 것이 내용의 대부분이다. 하지만 주변의 사물을 보고, 계절을 느끼고, 어쩌다 제법 명상에 가까운 이런저런 나의 감정을 함부로 소비하지 않고 그것을 정제하여 글로 남긴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둔다.
인간의 감정이란 정말 너무나 순식간에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순간을 놓치면 다시는 그 순간의 감정을 회복하기 어렵다. 하기야 또 놓친다고 해서 무엇이 안타까울까 만! 다만 서문에서 밝혔듯이 조금 덜 무료하고 나아가 일상의 삶이 위대해질 수 있기 위해 그 순간의 감정들을 문자화 해 보는 것이다.
글의 내용 중에는 『莊子』적 영감과 불교적 영감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莊子』와 불교의 필터를 통해 보려고 노력했음을 스스로 밝힌다. 생각이란 항상 고리에 고리가 연결된다. 그 고리의 끄트머리쯤 가서 마침내 더 이상 고리를 발견하지 못했을 때, 스스로 그 고리를 『莊子』와 불교의 세계로 연결시키고자 했다.
이렇게 무모한 漢詩集을 만든 지 14년째 되는 올해는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나름대로 눈에 보이는 현상을 넘어 내밀한 세계(자연의 도)의 실체에 다가가고자 했지만 10월이 다가는 지금 책 내용을 훑어보니 대략 난감하기만 하다. 거창한 제목과 비교해보니 건방지고 또 참 부끄럽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올해도 이미 기울어져 처음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지점에 와 있다. 부끄러움을 그냥 감수하기로 한다.
여러 가지 복잡한 과정을 거쳐 학교를 옮겼다. 2019년 9월 1일 명신고등학교에서 지수중학교로.
옮긴 학교는 이전 학교와는 다른 농촌지역이다. 내년에는 도시 학교에서 쓰는 글보다는 조금 더 내밀한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아주 작은 희망을 가져보지만 이 또한 자신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항상 그러하지만 내가 가는 길은 언제나 처음이고 동시에 돌아갈 수 없는 길이다.
2020년에는 무슨 표제로 할까를 며칠은 고민해야 한다. 문득 표제가 정해지면 다시 2020년의 여정이 시작될 것이다.
2019년 10월 말 中汎 金峻植 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