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日所懷
啼鳥不釋明 (제조불석명) 새는 알 수 없이 울어대는데,
鮮光褪葉間 (선광퇴엽간) 맑은 빛은 바랜 잎 사이로.
微風蛛家耿 (미풍주가경) 가는 바람에 거미집 반짝,
秋物眼堪寞*(추물안감막) 가을 물건 보고 있자니 쓸쓸하여라.
2019년 10월 26일 오전 산길을 걸으며. 이미 2019년 시집(천예)을 묶어 인쇄소에 보냈으니 이제 이 시는 2020년 첫 시가 된다. 앞으로의 1년도 부지런히 그리고 정밀하게 사물을 보고 또 그 너머를 보려 노력할 것이다. 다만 재주가 그에 미치지 못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산길을 걷고 있자니 산새들이 여기저기서 울어대고 가을 맑은 햇살은 빛바랜 잎 사이로 선연하다. 가끔 부는 바람에 거미집은 반짝이니 깊어가는 가을 풍경 조금 쓸쓸해 보였다.
* 靑莊館(청장관) 李德懋(이덕무)의 청장관전서 중 果川途中(과천도중)의 한 구절을 차운함, 이덕무는 조선후기 서울 출신의 실학자로서 利用厚生을 주장하였다. 그는 朴齊家, 李書九, 柳得恭과 더불어 청나라에 四家詩人의 한 사람으로 文名을 날린 대 시인이자 실학자이다. 이덕무는 가난한 환경 탓에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으나 학문에 뛰어났고 특히 시문에 능해 젊어서부터 文名을 떨쳤다. 사후에 그의 행장을 지은 연암 박지원은 시문에 능한 이덕무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한다. “지금 그의 시문을 영원한 내세에 유포하려 하니 후세에 이덕무를 알고자 하는 사람은 또한 여기에서 구하리라. 그가 죽은 후 혹시라도 그런 사람을 만나볼까 했으나 얻을 수가 없구나”하며 그의 죽음을 아쉬워했다. 이덕무는 청장이라는 호에 어울리는 모습을 가졌는데 호리호리한 큰 키에 단아한 모습이었다 한다. 또 행동에 언제나 법도가 있고 학문과 도학으로 중심을 잡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태도를 가졌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