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생각
1.
‘공정함’이란 ‘공평’(公平)하다는 말과 ‘올바름’(正)이라는 말의 두 가지 뜻이 포함된 말인데 우리는 ‘공평함’이 곧 ‘올바른 것’이 아닌가 하고 대부분 생각한다. 하지만 ‘공평’하다는 말의 뜻은 칼로 무 자르듯이 싹둑 잘라버리는 모양새다. 거기에는 ‘배분적 정의’가 없다. 오로지 ‘평균적 정의’만이 있는, 그래서 노예에게는 노예의 것을, 평민에게는 평민의 것을, 귀족에게는 귀족의 것을 주는 살벌하고 무표정한 평등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공정을 주장한다.
조금 더 들어가 보자. 공정은 올바른 공평함이다. 공(公)은 無私(무사), 즉 사사로움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면 사사로움이란 무엇인가? 私(사)는 벼를 뜻하는 화(禾)와 팔을 안쪽으로 구부린다는 의미의 마늘 모(厶)가 합쳐진 말이다. 많은 해석이 가능해진다.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모든 행위로 생각을 확장할 수 있다. 반대로 공은 모두의 이익을 위해 이루어지는 일에 붙는 접두어로 가정해보자. 모두 평등하고 올바른 것을 공정이라고 하자니 문제는 ‘올바른’이라는 말에 신경이 쓰인다.
‘올바르다’라는 말을 떠 올리면 여러 기준이 등장하고 각종의 가치가 개입하며 온갖 거래가 오고 간다. 바르다는 말보다 더 바른말, 올바른! 이 지점부터 사실 이 말은 핵분열처럼 그 뜻이 복잡해진다. 권력이나 금력을 가진 자들에게 올바른 것이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 올바른 것으로 될 수는 없다. 따라서 모두가 인정하는 올바른 것을 찾기는 불가능하다.
그러고 보니 공정의 뜻은 더욱 애매해진다. 올바른 공평이라니! 어쩌면 허사에 가까운 말이라는 생각도 든다.
2.
대입이 이렇게 까지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역사와 관련된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이미 우리는 많은 사실들을 알고 있다. 왜 우리가 이렇게 대학에 매달리는지, 그리고 이 상황은 아주 오래갈 것이라는 것까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고민이 깊어진다. 모두가 좋은 대학을 갈 수 있고 모두가 좋은 직장에 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하지만 그건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다.
문제의 핵심은 선발, 혹은 선별되어야 한다는데 있다. 구조적 문제인 것이다. 어차피 좋은 대학에 가는 인원은 정해져 있다. 따라서 그 선발 과정이 (그 분명한 뜻이 매우 애매하지만) 공정하자는 것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의 핵심이다.
완전히 시험만을 통해 선발하자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는 의견이 있다. 이유는 많다. 시험 외의 다양한 학교 교육 과정과 그에 따른 결과를 입시에 사용하자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즉 고등학교 생활의 전 과정과 학생의 변화의 상황을 통해 선발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속임수와 편법이 개입한다. 당연하다. 우리는 자본주의에서 살고 있다. 자본주의는 기회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다. 그래서 능력을 가진 자들이 거의 불법에 가까운 편법을 써서 학교생활의 과정과 상황을 대입에 유리하게 만들어 좋은 대학을 선점하는 것이다. 불공정하다. 그래서 그 기회를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시험을 통해 선발하자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이 시험이 더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지 않는가!
시험을 잘 치르는 것은 개인의 능력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래서 비교적 공정하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아직도 일부 유효해 보인다. 문제는 이 개인의 능력을 신장시키는 여러 요소들이 문제의 핵심이다. 물론 천재는 예외로 하자. 조건은 보통의 아이들을 기준으로 한다. 또 자본주의를 분명한 전제로 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아이들의 능력 신장을 위해 투입되는 자본의 량과 능력 신장에는 비례 관계가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자본주의가 완전히 성숙하지 못했던 1970~80년대에는 이 원칙의 예외가 제법 많았다. 하지만 지금처럼 자본주의가 완전히 정착된 사회에서는 성적에 대한 자본의 투입 그리고 산출은 거의 정비례 관계가 성립한다. 그래서 이 시험을 통한 제도도 불공정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자본에 따른 편차가 사람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3.
전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상위계층들이 자녀들의 좋은 대학 입학을 위해 노력(?)한 사실들을 보면서 보통의 우리가 느끼는 자괴감과 분노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모든 제도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자본으로 혹은 권력으로 그 약점을 이용,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든다. 이것은 현재 대한민국의 자본과 권력의 참모습이다. 절대로, 아주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들 때문에 입시제도를 아무리 바꿔도 결국 그들은 찾아낸다. 그 제도의 약점을, 그리고 약점을 이용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한 모든 방향을 찾아낼 것이다. 그때마다 또 제도를 바꿀 것인가?
4.
제도를 고치기보다는 제도가 건강해지도록 약점을 보완하고 권력과 자본이 함부로 제도를 흔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교육부가 할 일이다. 정권의 이익에 의해,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의해 제도를 바꾸는 것 자체가 대단히 불공정한 일이다.
그림은 프란츠 마르크의 Kämpfende Formen(형태, 혹은 모양의 충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