向寂滅寶宮 적멸보궁을 향하여
微塵含十方*(미진함십방) 작은 먼지에 우주가 있으나,
頒測卽無明 (반측즉무명) 나누어 헤아림은 곧 어리석음.
庭前栢樹子*(정전백수자) 뜰 앞의 잣나무인저,
金蘀煩惱片 (금탁번뇌편) 노란 낙엽, 번뇌의 조각인 것을.
2019년 12월 1일. 비 내리는 일요일 아침 사천 곤명면에 위치한 다솔사를 가다. 다솔사는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사리탑이 있어 전각 안에는 부처가 계시지 않는다. 하여 그 전각을 적멸보궁이라 부른다. 적멸보궁으로 향하는 계단과 바닥에 번뇌의 조각인 듯 노란 낙엽들이 흩어져 있다. 이 모든 상황을 넘어 나의 경지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깨달음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 내리는 빗방울 속에도, 저 떨어진 낙엽 속에도, 심지어 작은 티끌 속에도 우주가 있고, 그 우주 속에 다시 또 다른 우주가 중중무진으로 펼쳐질 것이다.
* 重重無盡緣起(중중무진연기)란 화엄경에 나오는 말로, 이 세계가 무한한 연기의 세계임을 말하는 것이다. 의상대사의 法性偈(법성게)*에 나오는 一微塵中含十方(일미진중함시방)의 또 다른 표현이다. 일미진중함시방이란 작은 티끌 속에도 시방세계는 물론 또 다른 무한한 우주가 펼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티끌 속의 우주의 티끌에도 또다시 또 다른 우주가 이어진다. 이렇게 이어지는 우주는 무한해서 끝이 없다. 이와 같이 중중무진 연기란 일미진중함시방처럼 무한히 이어지는 연기를 말한다. 법성게는 중국에 가서 華嚴經(화엄경)을 공부한 義湘 대사가 그 경의 핵심 내용을 7언 30구 210자로 표현한 것으로 의상 스님의 탁월한 안목과 지혜가 담긴 게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팔만대장경 중에서도 가장 방대하고 내용이 깊다 하는 대방광불화엄경을 축약해서 그 진수를 뽑은 글이다.
* 庭前栢樹子(정전백수자) 뜰 앞의 잣나무란 중국 당나라 시대에 趙州(조주, 778~897) 선사에게 한 선승이 물었다.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 이를테면 달마가 가져온 진리란 무엇이냐? 즉, 무엇이 禪의 진리냐? 라는 뜻이다. 이에 조주 선사가 대답했다. “뜰 앞의 잣나무니라.” 무슨 뜻일까? 화두는 이렇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言語道斷(언어도단)의 세계이다. 또한 화두는 암호처럼 지식과 계산으로 분석되지 않는다. 오직 큰 의심을 가지고 탐구하고 탐구한다면 결국 깨달음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 선불교와 화두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꼭 그 뜻을 추측해본다면 아마도 이런 뜻일 수도 있다. 즉 잣나무는 감정이 없는 무심한 나무이다. 無心(무심)이란 空한 것을 뜻한다. 즉 무심한 空의 상태가 바로 달마대사가 서쪽(인도)으로부터 가지고 온 禪의 진리요, 그대가 찾는 깨달음의 세계라는 말인데, 이런 해석도 대단히 주제넘은 짓이다. 조주선사 말의 진의는 말 밖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