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구속 영장이 기각되었다. 법률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오래 공부한 사람으로서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는 ‘조국’이라는 개인의 평가와는 전혀 무관한 순수한 법리적 입장만으로 그러하다는 이야기다.
조국이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는 이미 내 영역을 벗어나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조차 조국 문제에 있어서 매우 다양한 의견이 있고 심지어는 매우 극단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의 이야기와 논리를 들어보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인다. 그만큼 지금, 조국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의 폭이 넓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 즉 특정 사람과 사태에 대한 평가와 의견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있어왔다.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의견이지만 사람이나 특정 사태에는 근본적으로 실체적 진실이 존재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사람이나 특정 사태는 지극히 유동적인 시간의 경과 위에 있기 때문에 시시각각으로 변화한다. 그 변화의 한 순간이 전체를 지배할 수도 없고 역으로 전 과정이 특정 순간을 증거 할 수도 없다.
검찰이 이 나라 권력의 정점에 있음은 여러 가지 증거로 나타난다. 권력은 더 많은 권력에 갈증을 느낀다. 권력의 바닥에는 욕망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욕망은 ‘이기심’이라는 미립자들의 집합체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러면 누가 검찰에게 권력을 부여하였는가? 아이러니하게도 정치권력이다. 정치권력의 앞길에 걸림돌이 될 만한 장애물을 정치권력의 손에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대신 처리해 줄 힘을 가진 조직이 필요했고 그 조직이 바로 검찰이었다. 지나간 역사를 상기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다.
권력은 균형을 싫어한다. 견제도 싫어한다. 균형이나 견제는 권력의 속성이 아니다. 권력이 좋아하는 말은 지배 혹은 복종일 뿐이다. 검찰을 견제해야 한다. 검찰과 균형을 유지하는~ 이런 이야기는 아마도 검찰 권력이 가장 싫어하는 말일 것이다.
조국이라는 사람의 개인문제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그가 평소 입버릇처럼 이야기한 검찰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은 검찰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 것이 틀림없다. 한 개인의 삶을 권력기관이 이처럼 집요하게 파헤친 것은 어쩌면 우리 역사에서 그 예를 찾기가 힘들 정도이다. 검찰이 조국에게 복수하는 것을 우리는 정의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 어떤 경우에도 조국 개인의 삶은 엄중히 보호되어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 아닌가!
권력의 맛에 취한 검찰의 다음 행보를 힘없는 우리는 여전히 관전할 수밖에 없다. 다만 관전이 불편해지면 그저 눈을 감을 뿐이다. 이제 2019년이 며칠 남지 않았다. 2020년에는 공정하지는 않아도 최소한 민주주의 원칙에 근접하는 세상이 오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