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이 5일 지난 뒤.

by 김준식

또 한 해의 처음에 섰다.


사람들은 저마다 새로운 계획과 결심을 세우고 한 해를 맞이한다. 나 또한 몇 가지 다짐과 목표를 세웠으나 두서너 달 뒤면 아마도 기억에서조차 희미해질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다. 우리의 기억은 얼마나 자주 사라지고 또 얼마나 자주 형성되는 것인가?


기억!


새로운 장소와 자주 가보기 어려운 장소, 또는 특별한 장면이나 상황에 마주하는 현대인들의 자세는 사진을 찍는 것으로 특정 지을 수 있다. 사진이라는 이 획기적인 기술 이전에는 그림이나 기록이었을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처럼 사진기가 범용화 된 세상은 아마 지구 상에서 찾아보기 드물다. 국민 대 부분이 가지고 있는 스마트 폰 탓에 이제 사진은, 일상의 기록을 넘어 어쩌면 기록하기 위한 일상으로 바뀔 만큼 우리 삶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그 사진의 이면에 흐르는 정서는 기억의 저장이다.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기억의 정지이고 기억의 미화이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기억의 조정에까지 이르게 된다.


영어 Memory의 어원을 살펴보면 산스크리트어 smarati에 연결된다. 이 단어와 같은 어근을 가진 단어는 놀랍게도 ‘사랑’이다. 그리스어에서는 기억이란 ‘생각’이라는 뜻과 함께 ‘유해하다’는 뜻과 심지어 ‘파멸’이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기억이란 이런 의미를 두루 포함하는 말이라는 것에 왠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자의 記는 ‘쓰다’로 풀이되지만 破字해 보면 자신을 뜻하는 ‘己’와 말을 뜻하는 ‘言’이 합쳐진 글자이다. ‘스스로 되뇌어야 할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또, 憶은 생각으로 풀이되지만 마음 心과 뜻 意로 破字 되는데 이는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여러 생각들 중에서 분명하고 확실한 것을 나타내는 ‘의지’로 해석될 수 있다. 정리하자면 기억이란 동 서양 모두 매우 중요한 생각으로서 ‘좋음’과 ‘나쁨’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다.


새해 벽두부터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온갖 시정잡배들이 이합집산을 하고 알맹이 없는 당을 만들기도 하고 당을 없애기도 한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모두 제 잇속을 챙기는 얄팍한 술수일 뿐이다. 그들에게는 민중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들이 내놓은 현실정치에 대한 분석이나 의견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참으로 형편없는 깊이와 판단력만을 확인시켜 줄 뿐이다. 감히 단언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99%의 사람들, 그리고 나를 아는 99%의 사람들은 그들의 이야기에 단 1%도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단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다. 그 반대편 우리 민중들은 한 번도 기득권을 가져 본 적이 없다. 이따금씩 아무런 기득권도 없는 이들이 그들 기득권자의 꾐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꼴이 안타깝지만 그들도 역시 99%의 민중들이다.


북한의 김정은은 우왕좌왕하는 트럼프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인 길을 갈 모양이다. 한반도에 긴장이 감돈다. 이래 저래 살림살이도 어렵고 갈 길도 바쁜데 민중의 앞길은 안개가 자욱하다.


그래도 여전히 밝은 눈과 여전히 넘치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우리 민중들은 이 땅의 희망이며 동시에 새 역사의 받침이 될 존재다. 2020년 말이 되어 한 해의 기억을 더듬을 때, 아픈 기억을 덜 발견하기 위해 우리는 정치적 현실에 대하여 냉철하고 날카로워야 한다. 그러나 서로에게는 한 없이 따뜻하고 부드럽기도 해야 한다. 이중적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 이중성은 오직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이중성이 아니라 서로를 보듬어주기 위한 이타적인 이중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