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서울, 비.

by 김준식

그림 읽기의 내면, 바르트에 대한 기억


하루 종일 비가 온다. 서울 하늘은 유난히 어둡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본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그림에 들어있고 그 이야기를 강의 형식으로 해 주기를 올해로 거의 7년이 다 되어간다. 그래도 그림은 끝이 없고 이야기도 역시 끝이 없다. 하지만 다른 일과 달리 하면 할수록 이 일은 재미있어진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15~16세기 이탈리아의 그림들은 르네상스와 기독교의 그림자가 균형을 이루고 있는데 이를 테면 성모의 묘사가 세속적이 부분이 있는데 성스러운 성모의 이미지를 유지한 채 자세히 관찰해보면 세속적인 장면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한 때 잠시 롤랑 바르트 세계에 매혹되어 그의 책이나 그의 문체를 따라 한 적이 있다. 롤랑 바르트는 현대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자이며 구조주의자로서 후기 구조주의의 큰 산이다. 현대의 가장 활력적인 사유 체계의 개척자이며, 20세기 가장 위대한 신화 해독자 이기도 하다.


그가 1970년 일본을 여행하고 쓴 [기호의 제국] 속에 그가 본 동양, 특히 일본의 모든 것에 대하여 낱낱이 그의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지금 나의 이 미술 이야기는 마치 바르트가 동양을 해독하듯이 나 역시 서양이라는 거대한 집단의 구조를 그림이라는 도구를 통해 해독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바르트가 기호의 제국에서 젓가락에 대한 해석을 보면 그가 왜 구조주의자이며 새로운 사유 체계의 개척자인지 확연해진다. 바르트는 젓가락, 일본의 ワリバシ(木箸)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젓가락 : 서양의 먹을 것들은 위엄 있게 쌓인 채 팔린다. 여기에는 일종의 권위가 관여되어, 늘 묵직하고 거대하고 풍부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 반면 동양은 이와 반대로 아주 미세한 것을 추구하는 쪽이다.


동양 요리와 젓가락의 조화가 단순히 기능적이거나 도구적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음식물은 젓가락으로 집을 수 있도록 잘릴 뿐만 아니라, 젓가락도 음식물이 작게 잘려 있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다.


하나의 동일한 움직임 그리고 하나의 동일한 형태가 물질과 도구를 초월하여 <나누어짐>이라는 작용을 완성시킨다. 젓가락은 음식물을 나누기 위해 서양의 도구처럼 자르거나 찌르는 대신 분리하고 헤쳐 놓거나 흩트려 둔다. 이런 모든 기능에서, 함축적인 몸짓에서, 젓가락은 서양의 나이프 또는 포크와는 반대이다. 창과 칼로 무장한 서양의 영양 섭취 행위에는 약탈의 몸짓이 여전히 남아있다.”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음식의 배치와 표현 : 일본 요리에는 중심이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서는 모든 것이 다른 장식물을 위한 또 다른 장식물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식탁이나 쟁반 위의 요리는 부분들의 집합일 뿐이며, 그 어느 것도 영양 섭취에서 순서상으로 우월하지 않다. 일본전골은 그 처음을 제외하고는 특징이 없다. 일단 <시작>되고 나면 명확한 순간이나 장소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방해받지 않는 텍스트처럼 분산된다.”


내가 쓴 서양 그림 이야기는 대가의 구조적 해석과는 참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서양이라는 거대한 집합체를 이해하는 나 만의 방식이라고 본다면 표현의 차이라고 스스로 위로한다. 대가 바르트의 그림자조차도 존경해야 될 판에!


"Regenschauer in Partenkirchen(Rain Shower in Partenkirchen) 1838"에 대한 나의 분석은 이러하다.

그림 속 시골마을에 소나기가 퍼붓고 있다. 바람도 거세다. 우산을 든 아주머니는 아마도 가축들을 몰고 가다가 비를 만난 듯하다. 비바람이 거세서 우산을 들어도 별 소용이 없어 보인다. 하늘에는 비바람에 놀란 새 떼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아주머니 뒤로 따라오는 아저씨는 우산도 없이 개와 함께 천천히 걸어오고 있다. 아마도 부부가 가축을 들판에서 몰고 집으로 오다가 비를 만난 모양이다. Burkel은 지붕에서 흘러내린 빗물이 Dachrinne(다히너 ; 빗물받이, 홈통)으로 넘쳐흐르면서 바람에 흩날리는 모양을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비가 갑자기 쏟아지는 바람에 이미 마을 길은 수로처럼 물이 흐른다.


19세기 중엽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의 풍경화는 매우 정적이며 시적 은유를 담고 있는 낭만적 경향의 퐁텐블로 숲의 바르비종파로 대표된다면, 독일은 역동적 풍경에다가 소시민적이고 실리적인 풍속까지 더한 비더마이어 풍이 그 주류를 이루었다. 이는 문화적 차이이면서 동시에 사물에 대한 접근과 해석의 차이에서 유래된다.


그림 제목에 있는 지명 Partenkirchen의 정식 이름은 Garmisch-Partenkirchen으로서 독일 남부 도시 이름이다. 바이에른 알프스 산지의 독일 최고봉 추크슈피체산(2,963m) 기슭인 로이자흐(Loisach) 계곡과 파르트나흐(Partnach) 계곡이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한다. 이 그림이 그려진 당시에는 아직 Garmisch와 통합되기 이전(1935년 통합)이다.


독일 남부 고원 지역과 알프스 지방의 가을은 이런 비가 자주 오는 계절이다. 지붕 위의 굴뚝에서는 연기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저녁 시간일 것이다. 비를 맞고 가축을 몰아 온 부부는 이내 집에 도착할 것이고 따뜻한 난로 앞에 앉아 비 내리는 창 밖 풍경을 보며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리고 소중한 그들의 하루를 정리할 것이다. 비더마이어라는 흐름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바로 소시민적 삶이 이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 보이고 있다.


그림은 Johann Heinrich Burkel - Rain Shower in Partenkirchen(요한 하인리히 뷔르켈 작 파르텐크리헨의 소낙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