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처럼 불투명한 봄이 있을까?
하지만 나에게 늘 봄은 불투명이었다. 도대체 나의 불투명함은 어디로부터 왔을까? 국민학교 졸업 때까지 4번이나 이사를 했던 나의 어린 시절은 불투명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중고등, 대학, 청년시절은 시대조차 불투명했다. 3~40대는 집안의 온갖 풍랑으로 불투명했고, 50대가 넘어서야 비로소 희미하던 것들이 형체를 나타내기는 했지만 어쩌면 죽는 그날까지 이 불투명은 유지될 공산이 크다.
투명함을 앞으로의 움직임이나 미래의 전망 등이 예측할 수 있게 분명하다는 뜻으로 파악한다면, 이 투명함의 반대 지점에 서 있는 말 不透明은 曖昧模糊(애매모호)나 不確實로 이해될 수 있다.
애매하다는 말은 글자 그대로 본다면 어둑어둑한 새벽녘, 형체의 구분이 어려운 그 시간대를 칭함이고 모호함이란 죽처럼 모양을 정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불확실도 비슷한 말로서 무엇인지 단언하기 곤란한 경우를 나타내는 말이다.
이 단어들을 봄의 이미지에 적용해보면 ‘봄’은 앞으로의 변화에 대한 기대는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본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말 ‘봄’이나 영어의 ‘Spring’ 독일어 ‘Frühling’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이런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봄’과 불투명을 결합시킨 것은 단지 내가 보내왔던 ‘봄’이, 그리고 내가 겪었던 ‘봄’이 그러했던 모양이다.
나만 그랬다면 좀 억울하지 않은가! 독일 출신의 슈만도 그러했던 모양이다. 그는 정신적인 문제로 일생 동안 고통을 겪었고 또 그 이유로 죽었다. 그가 남긴 교향곡 ‘봄’ 은 전혀 ‘봄’ 같지 않은데 아마도 그가 보내고 겪었던 ‘봄’이 그러했던 모양이다. 뭔가 힘차게 나아가려는 듯한 이미지는 있으나 슈만 특유의 애매함도 곳곳에 있다. 1악장 Andante un poco maestoso(약간 권위적으로) – Allegro molto vivace (B flat major)은 4/4박자로 시작하여 진취적인 봄처럼 느껴진다.
이 음악을 지휘하는 쥬빈 메타는 인도 뭄바이 출신의 지휘자로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메타는 구스타브 말러 연주에 정통하다는 평을 듣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abrie8X9se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