佇見(저견) 우두커니 서서 바라 봄.
薄霧渗綠林 (박무삼녹림) 엷은 안개 푸른 숲에 스미니,
今春旣到夏 (금춘기도하) 올봄, 이미 여름에 닿아있네.
䳀鳴及微風 (일명급미풍) 산들바람 따라 뻐꾸기 울음,
幽樹盛多花*(유수성다화) 그윽한 나무에는 꽃들이 가득.
2020년 5월 16일 아침나절. 문득 아침 숲을 보다. 번잡한 일상이 한 주일씩 지나가고 있고, 그 사이사이에서 나의 삶이 얼기설기 엮어지고 있다. 숲 앞에서 우두커니 숲을 보니 아직은 어둑어둑한 기운이 남아있고, 그 사이에 어제 내린 비 탓에 엷은 안개가 그윽하다. 나무들 밑으로 녹색의 잡초들이 퍼져있어 숲의 정경을 더욱 아늑하게 한다. 어디선가 여름을 알리는 뻐꾸기 소리가 산들바람에 실려오는 이 절묘한 순간, 한 참 동안 서서 숲을 바라보았다.
자연은 그 어떤 꾸밈도 없다. 그러나 늘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글을 쓰는 것도 자연을 따라야 한다. 지나친 심리묘사는 자칫 글을 난해하게 하며 잠시는 멋스러워 보일 수는 있으나, 담백함이 없으니 싫증이 빨리 나게 되어 두고두고 읽을 수 있는 글이 되지 못한다. 때로, 있는 그대로의 감정에 따라 짧고 간략하게 표현하여 자연의 오묘함에 다가가고자 노력해본다. 24시 품의 沖淡이 이런 상황을 표현하는 말이다.
* 두보의 시 水檻遣心(수함견심) 중 한 구절을 차운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