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하는 사람들이 있는 장을 말할 때 우리는 ‘정치판’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 ‘판’의 속뜻에는 싸움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왜 싸우는가? 당연히 권력 때문이다. 권력의 속성은 절대 양분될 수 없고 동시에 양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정치판은 살풍경하고 피아의 구분이 없다. 따라서 언제나 속이고 배신하며 또 연대하기도 하는 이율배반과 음모가 그 속에 있다.
그런가 하면 정치의 대상인 보통 사람들은 정치가들보다는 덜 배신하고 덜 이율배반적인 삶을 산다. 왜냐 하면 보통의 우리에겐 싸워서 가져야 할 권력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거대한 음모 따위도 없다. 음모가 없는 우리가 정치판의 음모를 보고 느끼는 감정은 무서움 혹은 서글픔이다. 그 서글픔은 우리의 처지에 대한 자조적인 슬픔을 포함하여 인간에 대한 연민의 서글픔까지 포함된 약간은 복잡한 것이고, 무서움 또한 어두워서 불쾌한 느낌, 즉 불확실성과 불투명함에서 오는 무서움이다.
권력의 내부적 속성은 이익의 독점에 있다. 즉 권력을 가진 자들만이 가질 수 이익의 수호를 위해 그들은 권력에 복종하고 권력을 유지하려 든다. 사실 우리 보통 사람들은 이 권력의 이익을 누려 본 적이 없다. 따라서 그 맛도 느낌도 전혀 알 길이 없다.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현재의 상황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보고 욕하고 분노하고 또는 안타까워하는 우리가 그들보다는 조금 더 행복하지 않은가? 비록 우리에게는 그 어떤 담보된 이익도 없고 또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자신의 양심을 완벽히 속이고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가면조차도 속이는 저들, 정치판의 존재들보다는 최소한 인간적 행복을 누리지 않는가?
민족의 비극이었던 일제 치하의 굴욕적 상황을 겨우 겨우 꺼내어 진실에 다가가고자 했던 이 땅의 민중들의 노력이 정치판으로 활동무대를 넓혀, 아니 옮기면서 난장판이 되고 거기에 친일 쓰레기들과 모리배들이 모여 각자의 이익을 위해 한 바탕 진흙싸움을 시작했다. 정작 비극은 그대로이고 진실도 아직은 불투명한데 누가 누굴 물어뜯으려는지 서로 으르렁 거리는 꼴이란!
곧 21대 국회가 개원하고 우리는 수많은 입법과 정치적 행위들을 그들에게 기대한다. 그런데 그들은 벌써 저들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저들의 이익을 위해 새 판을 짜고 세력을 규합하고 은밀하게 내통하는 형국이다. 국민들을 들러리로 전락시킬 속셈인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권력의 속성인지도 모르겠지만 흘러나오는 뉴스만 보아도 21대 국회의 모습 역시 이전 시기의 그들과 전혀 다르지 않을 듯싶다. 기대를 슬며시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