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그 해의 기억.

by 김준식

2016년. 당시 나는 사천시 곤양면에 있는 곤양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었다. 농촌 지역에 있는 학교가 항상 가지고 있는 문제는 학생 수의 격감으로 오는 교육환경의 급격한 변화인데 당시 곤양고등학교도 이 문제의 중심에 서 있었다. 2015년 12월, 그해 교무부장으로 있으면서 학생 모집을 한 결과 한 반 정도의 학생이 입학하기로 결정되었다. 예상한 결과였고 다른 특별한 대책도 없었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모든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2016년 2월 초에 사천교육청에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2016년 신입생들이 소위 즈믄둥이들이다. 즉 2000년에 아이를 출산하면 아이가 좋다는 아주 터무니없는 속설 탓에 당시 2000년 생들이 다른 년도 출생자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웃기는 나라의 웃기는 현상이다. 어쨌거나 그런 영향으로 갑자기 학생 수가 늘어난 세대이다. 사천시 관내 중학교에서 고입을 시키려니 고입 정원이 정해져 있어서 사천시 관내 고등학교의 학생 정원을 채우고 약 20여 명 정도의 학생이 과원이라 곤양고에서 받아주었으면 한다는 이야기였다.


선생님들은 반대했다. 당연한 이유가 남은 20여 명의 아이들 때문이었다. 사천시 관내 고등학교에서 정원 밖에 있는 아이들의 수준이 좋을 리가 없다. 선생님들의 반대와 관리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이들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당장 이 아이들을 맡을 담임선생이 필요했다. 당시 곤양고에 계시는 선생님들은 여선생님이 많으셨고 연세가 드신 선생님도 많아 누군가를 곤란하게 하느니 차라리 내가 맡겠다고 자원을 했다. 교무 부장도 딱히 맡으시지 않으려 해서 내가 한다고 했다. 사실 나는 승진 점수와는 전혀 무관한 처지여서 나를 아는 지인들은 ‘오지랖’이라고 놀리기도 했다.


3월이 되고 아이들을 만나보니 참 걱정이 되는 아이들이 많았다. 사실 이 아이들도 곤양고에 오고 싶어 온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많아 학교 적응이 어려웠고 결국 3~4명은 학교를 그만두고 말았다. 아이들 이야기를 하나하나 다 하려면 책으로 써야 할 판이니 생략!


반장을 뽑았다. 다른 아이들보다 비교적 안정적으로 보인 그 아이는 처음으로 반장을 해 본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조 종례를 길게 하지 않는 편이다. 가능한 짧게, 가능한 간단하게 이야기한다. 우리 반 반장이 된 그 아이는 학교에도 잘 적응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아이가 되어갔다. 그런데 문제는 이 아이들을 두고 나는 2017년에 곤양고를 떠나야 했다. 공립학교 5년 연한에 유예까지 하면서 6년을 있었으니 더 이상 이 아이들의 담임이 될 수가 없었다.


아이들에게 떠난다는 이야기도 채 하지 못하고 황망하게 곤양고를 떠나면서 이 아이들에게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었다. 안타깝고 슬펐지만 방법이 없는 현실이 원망스러웠다. 나는 2017년 명신고로 자리를 옮겼고 그 아이들은 점점 기억에서 멀어져 갔다. 그러다가 2018년 이 아이들이 고 3이 되었을 때 명신고가 수능시험 고사장이 되면서 당시 우리 반 반장이었던 이 아이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얼마나 반갑던지 둘이서 한 참이나 끌어안고 있었다. 그리고 또 세월이 갔다. 어찌어찌하여 나는 지수중으로 왔고 그 아이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질 무렵 어제, 편지가 한 통 왔다.


그 아이였다. 별 가슴 아픈 추억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별한 애인에게 온 편지를 읽는 실연한 청년처럼 교장실에서 눈물 흘리며 손 편지를 읽었다.


모든 것이 과분하다. 2016년 한 때, 우리는 곤양고에 같이 있었구나, 동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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