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위한 수업’을 읽고(2)

by 김준식

‘삶을 위한 수업’을 읽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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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의 수학 선생님 이야기(1편 헤닝 아프셀리우스, 2편 헬레 호우키에르 )


독후감이라는 말보다는 책을 읽으며 해보는 나의 반성과 현재 나의 범위에서 보는 우리 교육의 아픔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헤닝 아프셀리우스 선생님은 경력 15년 된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이다.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는 이 선생님의 인터뷰 속에는 대한민국에서 선생을 30년이나 넘게 한 나를 아프게 하는 많은 말이 있다.


물론 나는 수학 선생은 아니다. 그런데 단 한 번도 이 선생님이 자기 학생들에게 하는 말을 나는 우리 학생들에게 한 적은 없다.

“여러분이 수학의 세계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앞으로 살면서 누릴 수 있는 많은 경이로운 것들을 놓치게 될 거야!” (‘수학’이라는 말을 각자의 과목으로 바꿔서 생각해 보면 쉽다.)


대한민국의 대 부분의 교실은 팍팍하다. 강퍅한 국가, 사회, 교육제도 속에서 교사는 숨 쉴 공간이 별로 없다. 배워 온 것처럼 가르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 분위기의 교실에서 교사가 이렇게 이야기하려면 엄청난 자기 혁신이 동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난관은 또 있다. 유치원 시절부터 지쳐온 학생들은 이미 학교 수업을 통한 경이로움을 잃고 있다. 우리 사회 구조 속에서 고등학교 교실에 있는 아이들이 교과를 통해 경이로움을 경험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아프셀리우스 선생님의 말씀처럼 나도 교실에서 내가 가르치는 과목을 배워야 하는 이유와 원인을 설명해 본 적이 없지는 않다. 아이들의 무 반응을 감내하며 그런 이야기를 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거나, 지극히 현실적으로 그렇게 광범위한 이야기로는 전국 단위의 시험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을 발견할 때 슬그머니 그만둔 경험이 있다.


학기 초에 진도를 내지 않고 과제도 내지 않는 아프셀리우스 선생님이 너무 부럽다. 최소한 내가 경험한 고등학교(인문계) 학생들은 진도를 내지 않거나 과제를 내지 않으면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심지어 왜 진도를 나가지 않는가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이 인터뷰를 기록한 마르쿠스 베르센은 덴마크를 포함한 스칸디나비아(엄격하게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의 유력 주간지 웨켄다비센의 기자이다. 그가 인터뷰를 하고 기록하면서 그의 가치관이 이 글들에 많이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그가 배워온 교육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한 인터뷰이기 때문에 덴마크 교육의 부정적인 면에 대해서는 기술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프셀리우스 선생님이 교실에서 권력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교사와 학생의 분권을 이야기하는 장면은 우리에게 몹시 낯설다. 대한민국에는 아주 묘한 불일치들이 존재하는데 국가는 일상적으로 교사에게 스승이라는 이미지를 강요하면서 또 다른 곳에서는 민주적 학교를 이야기한다. 스승이라는 단어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전통적 개념, 매우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느낌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교실에서 교사와 학생의 민주적 분권과 평등의 개념을 도입하려는 생각이 교사와 학생들의 위치를 혼란스럽게 한다.


교사와 학생들은 학교와 교실 곳곳에서 여전히 구 시대의 망령과 다투고 있다. 교장 선생님들의 역할을 이 나라 교육법은 ‘통할’이라고 표시하고 있는데 ‘통할’은 거의 군사적 용어에 가깝다. 교장 선생님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선생님들과 학급이 어쩌면 여전히 우리나라 교육이 나아가는 방향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 때도 많다. 그런 상황에서 교실에서 교사 학생의 분권은 아름다운 이야기일 뿐이다.


아프셀리우스 선생님 말처럼 지금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교사들은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다. 그런데 마지막 부탁이 마음을 지그시 누른다. 내가 가르친 학생들이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오늘 학교에서 좋은 경험 했어”라고 이야기하는 학생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초등학교 혹은 중학교에서는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현재의 교육 사회구조하에 존재하는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야간 자율학습과 그 후 학원을 전전하는 학생들이 교실에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제발 학생들이 이렇게 될 수 있도록 여유를 주어야 하는데……. 교사의 능력 밖의 일이다. 제발 아이들에게 여유를!




헬레 호우키에르 선생님은 경력 30년이 넘는 노련한 수학 선생님이다. 그녀는 시험에 대하여 매우 혁신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시험 횟수를 줄여야 함은 물론이고 대규모 집단 평가에 대하여 대단히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덴마크 교육제도에서 folkeskole(공립학교)는 10년제 과정이다.(0학년~9학년) 우리의 초, 중고가 합쳐진 개념이다. 여기서 헬레 선생님은 줄곧 담임을 하며 학생들을 졸업시켰는데 그녀는 덴마크 교육부가 시행하려는 전체 시험을 대단히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특히 객관식 문제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이다.


헬레 선생님이 좋아하는 평가 방식은 열린 과제다. 학생 스스로 문제를 창안해내고 프로젝트를 통해서 문제 해결을 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교사는 학생을 이해하고 학생은 스스로의 능력을 이해 발전시킨다. 이 또한 여유가 필수적이다. 교사는 학생을 기다리고 그 기다림은 막연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창의력을 자극하고 지원하며 방향을 제시하는 기다림이다.


몇 년 전 사회 선생이었던 내가 지역에 대한 탐구 수업을 시도하다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는데 가장 힘든 부분은 교장 선생님이 아이들을 데리고 지역을 돌면서 수업하는 것을 반대하신다는 것이었다. 수업을 하지 않고 노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로 나와 학생들을 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심지어 교감 선생님을 통해 확실한 결과물을 담보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듣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학생들은 정말 행복한 경험이었다고 지금도 만나면 그 이야기를 한다.


법률용어이기는 하지만 ‘제도적 보장’이라는 말이 있다. 학교에서 교사가 하는 모든 교육적 행위를 국가와 법률은 보장해야 한다. 거기에 정치적 고려, 교장 교감의 취향 고려, 학부모의 민원 고려가 개입되면 학교 교육은 관행의 유지와 계승 외에는 그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다. 덴마크가 행복한 나라라고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삶을 위한 학교라고 감히 이야기하는 것에는 바로 교육활동에 대한 이런 ‘제도적 보장’ 이 비교적 잘 지켜지고 있음일 것이다. 학생들이 행복한 학교가 되려면 교사가 먼저 행복해야 한다. 그런데 그 행복의 시작은 최소한 교육활동에 있어서의 자율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학교 교육의 근본 취지가 자연인으로 태어난 사람을 행복한 사람으로 성장시켜 가족과 사회, 국가로 환원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면, 헬레 선생님의 말처럼 시험 성적에 연연하지 말아야 하는데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이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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