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수업(3)

다시 껍질 속으로

by 김준식

철학 수업 세 시간째


오늘 불현듯 떠오른 생각!


철학 수업의 대 전제는 인간 본성의 위대함에 대한 무한한 신뢰로부터 출발해야만 한다.


세 시간째에 접어드니 아이들은 벌써 기존의 수업과 같은 방식으로 대처한다. 신기함이나 신비로움이 사라지고, 이 수업 역시 머리를 써서 뭔가를 생각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도달한 아이들은 초등 6년으로 이미 완성된 자신만의 껍질 속으로 몸을 숨기기 시작한다.


껍질 속으로 들어가는 아이들을 다시 나오게 하는 것과 껍질을 파괴하는 것 중에 과연 나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껍질로부터 나오게 하는 일이 더 옳은가 아니면 파괴하는 것이 옳은가를 선별해내기는 가치판단의 문제로 연결된다. 즉, 내가 그 껍질을 파괴할 수 있는 사람인지 혹은 자격은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정답은 이미 알고 있듯이 나는 그렇게 할 자격도 능력도 없다. 따라서 껍질을 파괴하는 것은 오로지 본인의 의지에 맡겨두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남은 것은 아이들이 다시 껍질 밖으로 나오게 하는 방법적 고민이다.


다시 나오게 하기까지는 아마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수업이 기존의 수업과는 다르다는 것을 아이들 스스로 알게 해야 하는데, 그 바탕은 위에서 말한 대전제, 즉 인간 본성의 위대함에 대한 무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그 신뢰는 곧 기다림이다. 지금의 세계와 대한민국, 그리고 교육 현장인 학교에서 아이들을 믿고 기다린다는 것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기다림 없이 철학 수업은 사실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고민이 깊어지는 대목이다.


저 번 시간의 '내부' '외부'에 대한 문제를 이번 시간으로 종결했다. 더 깊이 내려가기 싫다는 아이들의 무언의 저항을 눈으로 본다. 껍질 속으로 들어가서 촉수만 내민 아이들의 태도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환경 변화를 주기 위해 학교 숲으로 나가려고 했더니 아이들이 벌레 때문에 싫어한다. 그러면 교실에 있자고 했다. 기다림의 중요한 요건중 하나는 아이들 의견의 적극 수용이다.(여기에도 고민은 분명히 있다.)


다음 주제는 “눈에 보이는 것이 다일까?”인데 자연을 보며 이야기하면 참 좋겠지만 벌레 때문에 모두 반대를 하니 비디오를 통해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아마 아이들은 비디오를 보는 순간만은 편안해할 것이다.


아이들을 믿고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힘들지만 아이들의 내면에 약간의 반향이 있고, 그 반향이 울려서 커지기를 기다려야 하는데 수업자인 나는 벌써부터 조급함(30년을 넘게 그랬듯이)이 밀려온다. 나 자신의 통제가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음 주 더 더워질 것인데 힘내서 잘 기다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