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수업 두 번째
네임 텍을 걸고 아이들이 도서실에 들어서는 모습을 보며 이미 아이들에게는 한 시간의 수업이나 한 시간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읽는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보지만 늘 이 문제에 봉착하고 만다. 아이들의 자유로움을 끌어내는 방법은 정녕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잠시 고민에 빠졌다가 아이들과 인사를 나눈다.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하며 지난 일주일과 월요일의 상황을 묻고 대답을 듣는다.
마스크 넘어 들려오는 소리는 비슷하다. 이 또래 아이들이 대답할 수 있는 아주 정상적이고 평범한 대답 ”몰라요~!” 하지만 실망하지 말아야 한다. 정말 몰라서 모른다고 대답한 것뿐이니까.
오늘 수업을 위해 지난주 금요일에 아이들에게 읽기 자료를 건넸다. 그리고 두 가지 생각해보기를 같이 적어 놓았다. 첫 번째 문항은 ‘나의 내부와 나의 외부 생각해 보기’였다.
아이들이 금요일 받은 읽기 자료와 문제를 생각해볼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사실 기대 가능성이 매우 낮은 이야기다. 교과 공부도 잘하지 않고 시험 때가 되어야 겨우 주말에 책을 보는 아이들에게 ‘나의 내부’와 ‘나의 외부’를 생각해 본다는 것은 사실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하지만 잠시 스치면서라도 읽기 자료를 본다면 아이들의 태도는 아주 깊숙한 곳에서부터 분명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사실 근거가 매우 희박하기는 하지만) 믿음은 있다.
첫 번째 시간에서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인인 나의 외부와 내부의 작용에 대하여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리고 2명씩 짝을 짓고 모둠 이름을 정하게 했다. 집에서 생각해보지 않았으니 다시 처음부터 이야기하고 난 뒤(저번 시간 기억 되살리기) 나의 내부와 외부를 종이에 적어 보라고 이야기했다.
이런 과정을 아주 오래 그리고 꾸준히 반복하여야 해야 할 것이다. 결국 교사인 나의 믿음과 기다림이 아이들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일반 교과 수업을 진행하고 계시는 선생님들께 참으로 미안하다. 선생님들께서는 성취해야 할 단계가 있고 평가가 있으며 목표가 있다. 그 흔한 수업 목표!(지금도 여전히 이 목표에 대한민국 교육은 올인한다.) 목표는 참으로 멋진 것이다. 그러나 목표를 위해서라는 생각으로 바뀌면 목표 외에는 모든 것이 가치를 잃어버린다. 교육적 논의는 나중에 하자.
아침에 일어나 학교까지 오는 과정에서 작용한 ‘나’의 내적인 원인과 외적인 원인에 대하여 아이들은 토론을 하며 뭔가를 쓴다. 아이들이 쓴 답은 사실 정답이 없는 문제다. 그 이야기를 해 주고 5분 정도의 시간을 주었다.
다양한 대답들이 나온다. 분명한 것은 아주 희미하게 정말 희미하게 내 이야기의 방향에 대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희망을 가질 정도는 아직, 전혀 아니다.
이것은 아이들의 학력 수준과는 거의 무관한 것이다. 짙은 안개처럼 가려진 아이들 스스로의 마음을, 역시 스스로 바라보고자 하는 이유를 발견하고 그 안갯속으로 탐험을 떠나는 순간까지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해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