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절 눈에 보이는 것이 다일까?
1. ‘내가 보는 것’과 ‘나에게 보이는 것’.
봄이 되면 앙상한 나뭇가지에 새 싹이 돋는다. 아기 손톱보다 더 작은 새싹이 어느새 어른 손바닥만큼 커진다. 겨울 동안 꽃눈 속에서 몸을 겹쳐 웅크리고 있던 꽃잎들은 어느새 꽃눈을 찢고 나와 환한 꽃을 피운다. 겨울 동안 잘 알아차리지 못했던 나무 이름이 꽃으로 하여 우리에게 이름을 가진 나무로 다가온다.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의 차이)
꽃들이 피어나면서 동시에 꽃잎이 떨어지고 그 떨어진 자리마다 열매가 맺히기 시작하여 온도가 올라가는 여름이 오면 무성한 잎과 함께 열매들은 그 크기를 키운다. 비바람이 불고 또 가끔은 심한 바람이 몰아쳐 나무를 흔들어 잎과 열매가 땅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고난을 이겨낸 열매들은 각각의 색깔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며 가을을 맞이하고 누군가에 의해 나무에서 분리되거나(수확) 아니면 완전하게 익어 껍질을 깨서, 스스로 소중히 간직해 온 열매 속의 씨앗을 바람 혹은 움직이는 것들을 이용하여 다시 세상 속으로 널리 퍼뜨린다.
그리스 엘레아(지금의 이탈리아 남부) 출신의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BC. 515~445)는 이렇게 우리가 눈으로 보는 세상이 가짜(허상)라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끊임없이 변화하고 또 사라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어느 것이 진짜(분명하게 존재하는 것)인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그가 생각한 진짜는 ‘변하지 않고 고정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지금부터 조금 복잡해진다. 위에서 설명한 자연현상은 나에게 ‘보이는 것’이다. 즉 나의 의지나 생각과는 무관하게 일어나는 자연현상이다. 파르메니데스가 허상이라고 말한 것들이다. 그러면 나의 의지로 ‘보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봄날 새싹은 내가 보려고 해서 ‘보는 것’인가? 아니면 단순하게 ‘보이는 것’인가? 나의 의지로 보는 것은, 이미 내 머릿속에 보고 싶어 하는 것의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그 형상이 있고, 그것과 유사한 것을 찾을 때(혹은 보일 때) 확연하게 드러나 보이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내 머릿속에 여러 가지 나무나 풀의 새싹 이미지가 있는데 자연에서 유사한 것을 보았을 때 우리는 새싹을 내가 보았다고 이야기한다.(즉 내가 ‘보는 것’) 그렇다고 반드시 어떤 특정한 이미지가 머릿속에 있을 필요는 없다. 다만 내가 특정 대상을 보고 있다는 희미한 느낌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
2.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일까?
내가 의지를 가지고 보고 있는 나무, 혹은 풀의 새싹은 곡 새싹의 형태를 잃어버리고 여린 잎으로 바뀐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것을 보면서 파르메니데스의 의심(모든 것은 변하기 때문에 허상이라고 한 말)에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다. 그러면 변하는 것 뒤에 변하지 않는 무엇인가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생겨난다. 그것은 변화의 근본 원인일 수도 있고 변화의 원리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매일 보고 있는(즉 우리가 의지를 가지고 보고 있는) 것은 언제나 변화한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매 시간, 매일, 매월, 매년 우리는 변화를 본다. 이렇게 변화하는 것을 우리는 ‘현상’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렇게 현상의 변화가 일어나는 원인은 무엇일까? 항상 변화하지만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있는 이유와 그 규칙은 도대체 어떻게 정해졌을까? 그 원인이나 규칙의 생성에 관련된 것을 우리는 ‘본질’이라고 부른다.
3. ‘현상’과 ‘본질’ 그리고 통찰력
‘현상(現象)’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실제로 드러나 있는 것’, ‘볼 수도 있고 느낄 수도 있는 것’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사람의 오감(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으로 파악될 수 있는 자연 계의 모든 것이 곧 ‘현상’인 셈이다. 더불어 이 다섯 가지 감각이 어우러져서 만들어내는 가상의 감각(이 이야기는 인식론으로 빠질 위험이 있다.)으로 파악할 수 있는 ‘현상’도 존재하기는 한다.
‘본질(本質)’의 뜻은 ‘어떤 것’이 그 ‘어떤 것’으로 있기 위해(‘현상’으로 나타나기 위해 - 존재) 반드시 필요한, 혹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어떤 것’은 곧 ‘현상’이다. ‘현상’으로 나타나기 위해 그 현상의 원인이나 혹은 바탕이 곧 ‘본질’이라는 이야기다.
2600년 전 엘레아 사람 파르메니데스의 의심은 여전히 유효하고 여전히 의문이다. 즉, ‘현상’과 ‘본질’의 문제는 21세기인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이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로 남아있다.
어떤 사람은 ‘현상’을 보고 ‘본질’을 보기도 하는데 이런 능력을 통찰력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능력이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범위가 매우 좁다. 통찰력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통찰력을 가진 사람의 예를 들어보면 조금 이해하기가 쉽다. 그렇다고 밑에 설명한 예시가 완전하게 통찰력으로 보기에 곤란한 부분이 있는 것도 맞다.
유명한 IT기업 APPLE을 창립한 ‘스티브 잡스’(Steven Paul "Steve" Jobs, 1955-2011)를 생각해보자. 그는 거의 예지력에 가까운 통찰력으로 APPLE이라는 독특한 세계를 창조했다. 우리가 쓰는 아이폰으로부터 컴퓨터까지 ‘현상’으로부터 나타난 여러 가지 단서를 통해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발휘하여 자신의 차고에서 컴퓨터 몇 대로 출발하여 오늘날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어쩌면 파르메니데스가 이야기한 변화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는 이야기와 그 바탕에 흐르는 원리에 대한 의심이 잡스에 의해 증명되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