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수업 (6)

객관과 주관의 묘사.(보이는 것과 보는 것)

by 김준식
P20200706_103011224_6DBBFAAA-63DE-463E-9C28-C02E31A68B13.JPG
P20200706_103104249_24E36EF4-AF85-4452-A739-8A178E1EC8FF.JPG


내가 ‘보는 것’은 주관이다. 한자 ‘볼 視(시)’는 ‘보일 示(시)에 의지를 표현한 ‘볼 見(견)’이 더해진 글자다. 즉, 내가 나타나 있는 대상을 보려고 하는 의지를 가지고 본다는 것이다. 단순히 보여지는 것을 넘어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려는 글자가 ‘볼 視(시)’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거의 대부분의 단어에 이 視자가 쓰인다.


반대로 내게 ‘보이는 것’은 객관이다. 내가 보려고 해서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타나 있는 자연 현상이 ‘보일 示(시)다. 나의 의지와는 거의 무관하게(또는 타인의 의지가 개입되어 있는) 배치되어 있는 것들이 우리 눈에 보일 때 ‘보일 示’를 쓴다. 示範(시범), 示唆(시사: 어떤 것을 미리 간접적으로 표현해 줌), 示達(시달) 등이 대표적 예이다.


아이들에게 아침부터 이해하기 아주 힘든 이야기를 시작했다. 물론 위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러 가지 방편을 이용하여 아이들에게 이 어렵고 힘든 ‘주관’ 과 ‘객관’의 세계를 이야기했다. 아이들의 실 생활과 연결 지어 이야기했더니 다행히 아이들이 웃는다. 약간의 이해가 있다는 뜻이다. 좋은 신호이기도 하다.


“oo 이가 학교에 와서 수업을 하던 중 아끼는 필기구를 잃어버렸다.”


“그러면 학교에 자기와 비슷한 필기구를 쓰는 친구들의 필기구가 모두 자기가 잃어버린 필기구와 비슷해 보인다.”


이렇게 필기구를 보는 태도는 ‘보는 것’일까 아니면 ‘보이는 것’일까? (이 설명을 더 했다. 즉, 평소에도 그 필기구를 자주 보지만 오늘 oo 이가 필기구를 잃어버리고 나서 친구들의 필기구를 보니 친구들의 필기구들이 모두 oo 눈에는 자기 것처럼 보인다.)


아이들은 ‘보는 것’(의지를 개입시켜서 나타나 있는 대상을 관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으로부터 주관과 객관을 분별해내는 단계로 쉽게 넘어가지는 못한다. 그래서 오늘은 먼저 아주 객관적인, 즉 눈에 보이는 대로 묘사하기를 시도해 본다. 문장으로 쓰면 더 좋겠지만 단어로만 써도 관계없다고 이야기했다. 일단 수업하는 장소인 도서관을 보이는 대로 묘사하도록 했다. (이 방법은 참여 관찰의 연구 방법인데 Ethnography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아이들은 도서관의 사물에 대하여 묘사는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의지를 개입시킨다. 이를테면 도서관의 서가에 꽂힌 책을 ‘많다’라고 표현한다거나 창 밖으로 멀리 있어 희미한 운동장의 ‘풍경’을 묘사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세부적인 묘사가 없어서 주관적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묘사도 한다. “벽이 나무다”, “소리가 들린다.” “~안에는 무엇이 있다.”, “칠판에 글자가 써있다.” 등등… 하나 하나 짚어 가며 왜 그것이 객관이 아닌지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이제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주관과 객관을 정확하게 구분할 수 없는 모호함이 있을 수 밖에 없다. 현상은 주관과 객관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이 두개의 관점을 분리하기가 그렇게 만만한 일은 아니다.


다음 시간에 자신들이 쓴 내용을 바탕으로 오류를 좀 더 천천히 이야기 해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