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과 본질(2)
아이들은 일주일 사이에 모든 것을 잊는다. 이런 일이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닌데도 이런 상황과 마주하면 늘 가볍게 좌절한다. 다시 아이들에게 주관과 객관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것조차도 아주 까맣게 잊어버렸다. 하기야 쉬운 문제도 일주일이면 잊어버리기 마련인데 이 어렵고 힘든 문제를 잊어버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다시 하나하나 설명한다. 아이들은 처음 듣는 것처럼 생소해한다.
그래서 거의 처음부터 새롭게 이야기를 한다. 이야기하면서 슬슬 조급함이 생긴다. 늘 이 조급함이 문제다. 어차피 아이들에게 지금의 어렵고 힘든 철학적 의제가 쉽게 다가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는데도 결국 내 교직 생활 30년 이상의 타성이 조급함을 불러일으킨다. 잠시 돌이켜 생각한다. 놓아야 한다. 한 없이 놓고 또 놓아야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반응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일반 교과 선생님들에게 참으로 미안한 마음이 든다. 정해진 과정이 있고 또 그 과정의 진행에는 반드시 평가가 있는데 이런 상황을 여전히 견디시는 선생님들이 참으로 존경스럽다.
현상과 본질은 여기에도 대입이 된다. 지금의 현상은 여러 본질을 가지고 성립되어 있다. 먼저 나를 돌아보자. 30년 이상 교직 생활의 대부분을 성과주의로 살아온 내가, 지금의 철학 수업을 설계하면서 가장 먼저 생각했던 것이 아이들 스스로의 힘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 기다림은 지금까지 내가 교직생활에서 경험해왔던 모든 경우와는 다른 종류의 기다림 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아직 나는 스스로 그 기다림을 정의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정의 내리지 못하고 있으니 막막한 느낌이 드는 모양이다.
이런 상황은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이미 지난 7~9년의 학교 생활에서 생존의 방법(?)을 터득한 것처럼 보이는데 이를 테면 대충 눈치 보며 지내기, 아는 척하고 대답하기, 회피하기, 모르는 것과 아는 것에 대하여 명확하게 이야기하지 않기 등 다양한 전략으로 수업에 참가한다. 가능한 교사의 눈을 피하고 가능한 수업내용 외적인 곳에서 재미를 찾으려 노력한다. 이 모두는 사실 어른들이 거의 제공한 능력들이다. 초등학교 6년 동안 갈고닦은 내공(?)이라 만만하지 않다. 30년 내공이 6년의 내공 앞에 여지없이 무너지는 현실이다.
본질을 안다고 해서 현상을 즉각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본질의 인지는 나타나는 현상이 전혀 엉뚱한 것으로부터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벼운 수긍의 단초를 제공할 뿐이다.
7월 하순, 장마 탓에 눅눅하고 침침한 이 아침, 아이들은 언제나 그렇지만 생소한 철학의 바다에서 표류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표류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표류는커녕, 그 바다에 발도 담그지 않고 안전한 자신의 영토에서 지내고 있을 것이다.
다시 그 아이들을 바다로 끌어 들일 수 있는 장치, 혹은 동기를 제공해야 하는데 기다림은 멀고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본질을 탐구하면 할수록 나의 능력의 한계가 너무나 또렷해 보이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