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수업(11)

1학기 수업을 끝내며

by 김준식

지난주 금요일 내 준 자료를 읽고 온 학생은 예상처럼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런 예상은 빗나가는 법이 거의 없다. 주말 동안 뭘 했는지 한 명씩 물어보니 남 녀 학생 가릴 것 없이 게임이 압도적으로 많다. 게임을 왜 하는지 물었더니 “재미있다”라는 답이 역시 대부분이었다. 그럼 왜 재미있는지를 물었다. 말문이 막히기 시작한다.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피한다.


다그쳐 물었다. “왜! 게임이 재미있을까?”


한 아이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화면이 자주 바뀌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요….”라고 이야기했다. 그 아이의 말을 좀 더 부연해서 설명한다. ‘바뀐다’는 말에 방점을 두고 이야기했다. 바뀌는 것은 ‘변화’라고 이야기했더니 아이들이 피식 웃는다.


아이들의 웃음은 아마도 이런 것일 것이다. “그럴 줄 알았어!… 내 준 유인물에 '변화'라는 단어가 있으니 그 이야기를 하려고 게임 이야기를 했구만!”


맞다. 그렇게 수업을 시작하고, '변화' 이야기를 시작했다. 방편을 아무리 아무리 이용해도 아이들이 덤덤한 표정이다. 목이 쉴 만큼 이야기를 해도 아이들은 역시 덤덤하다. 다시 차분하게 처음 이야기를 다시 하고, 또 처음으로 되돌아가기를 몇 번 했더니 그제야 몇몇 아이들이 약간 관심을 보인다. 참 어렵다.




『장자』라는 책에서 변화는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化”에 방점을 둔다. 한자 ‘化’는 바로 선 사람과 거꾸로 선 사람이 붙어있는 회의 문자다. 즉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을 반대로 배치하여 사람의 죽는 것을 ‘화(化)’한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한자에서 ‘변화’는 시차를 두고 일어나는 엄청난 차이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유인물에 있듯이 물 이야기를 예로 들어 아이들에게 변화를 이야기하려고 어제저녁 장마 뉴스를 예로 들어 물의 변화를 이야기했다. 그런데 아이들 표정이 조금 이상하다. 아뿔싸 아이들은 뉴스를 보지 않는다. 그러니 장마 때문에 물난리가 났는지 사람이 죽었는지 전혀 모른다. 이 놀라운 정보 시대에 아이들은 뉴스와 담을 쌓고 있다. 뉴스는 재미없어서 보지 않는단다. 유튜브만 본단다. 에효!


그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우리 학교 주변의 장마철 이야기를 했더니 아이들은 비가 많이 온 것은 알지만, 물이 불어나고 그로 인해 물이 범람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으므로 강물의 변화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한다.


수업하는 나는 이렇게 중학교 아이들과 공감대가 좁다. 이 어려운 이야기가 공감대가 좁으니 더 어려워진다. 마음먹은 것처럼 쉽지 않음을 알지만 이 아침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과 소통할 정말로 좁은, 거의 실낱같은 공감대를 한번 더 확인하다.


오늘은 1학기 철학 수업 마지막 시간이다. 6월 8일 처음 시작하여 오늘로 9시간째. 거대한 철학의 바다에 돛을 올리고 출항은 하였지만 배도 작고 아직은 항로조차 불분명하다. 하지만 일단 출항은 했으니 파도치는 바다도 볼 것이고, 잔잔한 바다도 볼 것이며, 때론 오가는 배들도 보게 될 것이다. 거대한 배도 우리와 같은 작은 배도 이 바다 위에서는 그저 나뭇잎 같은 존재일 뿐이다.




아이들에게 1학기 동안 고생했다고 이야기하며 수업을 마치려는 데 한 아이가 묻는다.


선생님이 내어 준 종이에 보니까(수업 중에 읽은 모양이다.) “변화를 다스린다는 말이 있던데, 그러면 내가 변하는 것도 다스리는 누군가가 있을까요?”


그 아이에게 답을 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이 질문을 2학기에 첫 시간에 이야기하자고 했지만 그 아이도 다른 아이들도 모두 하얗게 잊어버리고 2학기 첫 수업에 참여할 것이 분명한데… 하지만 어쩌랴! 아이들과 인사하고 2학기를 꼭 꼭 다짐하며 1학기 철학 수업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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